공정위, 당초 내주 시행령 입법예고 계획했으나 연기하고 관련 부처간 추가 협의
개정시 쿠팡 김범석 총수 지정 가능···’최혜국대우 위반‘ 쟁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 사진 = 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 사진 = 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정부가 외국인도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하려 했으나, 부처 간 이견으로 발표 시기를 조정하기로 했다.

‘미국인 투자자가 제3국 투자자보다 불리해선 안 된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신중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당초 다음 주 초로 계획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취소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기획재정부와 개정안 내용 및 향후 추진 일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고치려던 이번 개정안은 외국 국적을 보유한 한국계 인물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기업 집단과 관련한 각종 신고와 자료 제출 의무를 지고 사익편취 규제 또한 적용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쿠팡이다. 그동안 공정위는 쿠팡의 동일인으로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대신 법인 쿠팡을 지정해 왔다. 하지만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및 특혜 논란’이 제기되면서 연구용역을 거쳐 외국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온 것이다.

총수의 사익편취 방지는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고, 개인이 실질적으로 회사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경영권을 행사하는데도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총수 지정을 피해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쿠팡 법인이 총수가 되면 쿠팡 및 계열사 거래만 공시하면 되지만, 김 의장이 총수가 되면 배우자는 물론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과의 거래가 모두 공시 대상이 된다. 미국 본사 계열사 거래와 외국인 임원도 공시 대상이다.

하지만 미국 상무부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실무회의 직전 공정위의 방침에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동일인 제도를 외국인에게 적용할 경우 FTA의 최혜국 대우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혜국 대우는 다른 나라의 투자자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5월 1일 지정된 대기업집단 76곳 가운데 동일인이 법인인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은 총 11곳이다. 쿠팡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 미국계 GM(제너럴모터스) 그룹의 한국GM 등 다른 외국계 기업집단도 충수 없는 대기업집단에 포함된다.

공정위는 최혜국 대우 조항 우려 등도 내부 검토를 통해 해소했다는 입장이지만, 부처 간 협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고려해 발표 시기를 연기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역시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공정위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산업부·외교부 등과 사전 협의를 마친 후 입법 예고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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