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방심위 의결 거치지 않은 DB 제공은 위법”
방통위 “사업자 면책 조항 구체화해 시행령 개정할 것”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n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의무 적용에 인터넷 사업자들이 정부의 무리한 법 집행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필터링에 활용할 ‘테스트 영상 데이터베이스(DB)’를 배포했는데 검증도 없이 임의로 사업자들에게 배포한 탓이다. 방통위 DB로 일반 영상이 걸러지는 ‘오검출’ 현상이 발생하면 그 책임은 사업자들이 져야 한다. 방통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업자에 대한 면책 규정을 신설할 계획이란 입장을 밝혔다.

28일 IT업계에 따르면 방통위는 현재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 사업자들을 상대로 불법촬영물 필터링 조치에 대한 성능검사 및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n번방 방지법에 따라 사업자들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필터링 기술을 활용해 영상 게재를 제한해야 한다. 

n번방 방지법은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20년 마련, 지난해 12월 시행된 법이다. 일정 규모 이상(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또는 매출액 10억원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의무화했다. 지난 4월 기준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 등 총 88개 사업자의 110개 사이트가 해당한다. 의무를 미이행한 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 3% 이하의 과징금 등 제재를 받게 된다.

이 가운데 방통위가 필터링 조치에 대한 성능검사에 나선 것은 법 시행 이후에도 불법촬영물이 아닌 일반 영상이 필터링되는 ‘오검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단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 업계 “테스트용 DB 활용에 따른 오검출 발생 시 부담은 사업자 몫”

인터넷 사업자들은 방통위가 법적 근거 없이 테스트 영상 DB를 배포해 검열과 관련 오검출 우려만 키웠다고 지적한다. 특히 불법촬영물이 아닌 일반 영상이 필터링되는 오검출이 발생할 경우, 이용자 비판을 사업자들이 감당해야 한단 설명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사업자들이 방심위에서 공식적으로 의결된 동영상의 DB를 가지고 필터링해야 하는데, 방통위가 방심위 의결을 거치지 않은 테스트 영상의 DB를 임의로 배포하고 필터링하라고 했다”며 “엄밀히 말해 방통위가 심의·의결되지 않은 DB를 임의로 집어넣은 것은 위법한 행동이다. 이는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대놓고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용자들이 정상적인 영상을 올렸는데, 방통위가 임의 제공한 DB로 필터링 처리될 경우, 위법한 자료로 필터링한 꼴이라 검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방통위 핑계를 대더라도 1차적으론 사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검열 지적에 대한) 면책 규정이 없다 보니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30조의6 제2항은 사업자들이 받는 DB는 방심위 심의·의결을 거치라고 규정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사진 = 연합뉴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 사진 = 연합뉴스

◇ 방통위 “필터링 기술 점검 차원에서 배포”···시행령 개정 예고

방통위는 필터링 기술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테스트용 DB 제공이 불가피했단 입장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성착취물 등을 단순 소지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불법촬영물 원본을 테스트용으로 활용하기에 한계가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필터링이 잘 되는지 확인하려면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데, 아무리 정부라고 하더라도 불법촬영물 원본을 올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 보니 기술이 제대로 구동하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로 테스트 영상 DB를 제공했다. 테스트 가능한 영상들을 짧게 만들어 개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업자들의 우려를 인식해 방통위 내부 및 사업자들과 개선방안을 지속 검토하는 한편, 추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오검출에 따른 면책 규정을 신설하겠단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성범죄 관련 처벌법에 위배되지 않게 n번방 방지법을 적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내부 고민이 많다”며 “사업자들은 경제적·사회적 리스크를 방지하길 원하니까 발생 가능한 경우의수에 대해 우려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태료, 과징금 처분을 내릴 때 기술적 문제 등은 고려하고 있다. 일단 현재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기술적으로 현저히 곤란하거나 사업자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경우엔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단 조항이 있다”며 “사업자 귀책이 없지만 이용자로부터 컴플레인을 받는 경우에 대해 면책 조항을 두는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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