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경영진 징계 가능성 시사···'내부통제 갈등' 재현 가능성
"통장·직인관리부터 모니터링까지" 우리은행 내부통제 총체적 부실 결론
횡령 당시 전임 경영진만 4명, 관련 부서 직원까지 범위 확대 시 수십명 징계 불가피
책임자 특정 어려워 난항 예상···"당국 판단에 따라 우리금융과 갈등 재확산될 것"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건을 놓고 금융감독원이 경영진 징계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 불완전판매 사태로 비화된 양측 간 '내부통제 갈등'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금감원, 제재심 회부 여부와 징계 수위·대상 확정 예정···중징계 전망
28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내부 논의를 거쳐 우리은행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 회부 여부와 징계 수위·대상을 확정할 예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시 재직했던 전직 우리은행장도 징계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현장검사 결과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은행은 인사와 공문, 통장·직인관리부터 모니터링까지 내부통제 기능에 허점을 드러냈다. 8년에 걸쳐 700억원이라는 거액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이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만큼 금융당국은 관련 임직원과 우리은행에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은 은행 직원의 주도면밀한 범죄행위가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이지만 사고를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은행의 내부 통제 기능 또한 미흡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횡령 직원은 팀장이 자리를 비웠을 때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도용해 무단 결재하고 외부 공문을 거짓으로 만들어 은행장 직인을 요청한 후 이를 출금에 이용하는 식으로 주도면밀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횡령을 위해 공·사문서를 위조했는데 부서장은 물론 은행장 직인까지도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범행 도중 1년 간 파견근무를 간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파견 기관에 출근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무단 결근, 출자전환 주식 임의 출고 등 추가 횡령 사실 등이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내부통제에 있어 총체적으로 전방위적인 부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횡령직원이 10년 동안 관련 자금을 계속 관리해왔음에도 우리은행이 단 한번도 해당 직원에 대해 명령휴가를 실시하지 않았다. 명령 휴가란 위법 행위 방지를 위해 강제로 휴가를 부여한 뒤 해당 임직원의 업무 수행 적정성을 점검하는 제도다. 수·발신 공문에 대한 내부공람과 전산 등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문 위조가 가능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여러 차례 횡령을 저지른 후 약 1년간 무단결근했는데 우리은행은 금감원 검사 결과 전까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내부 통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책임자 특정 여부가 관건···금융당국 책임론도 도마에
사안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관련 임직원에 대한 징계가 불가피하지만 무엇보다 핵심 관건은 책임자 특정 여부다. 특히 제재 범위에 CEO가 포함되는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국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CEO 징계 가능성을 언급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제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사건 발생 당시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은 총 네 명이다. 관련 부서 직원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대상이 수십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횡령 사건 당시 우리은행장들을 모두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으로 징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은행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2016년 8월 시행됐고 그 이후 임명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이미 DLF 사건에서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여기에 지난 22일 손 회장이 제기한 중징계 취소소송 2심에서 금감원이 패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CEO 제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한 수차례의 걸친 검사에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존재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선이다. 금감원은 횡령이 발생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은행을 11차례 검사했고 종합검사까지 실시했지만 횡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준수 부원장은 "금감원이 우리은행에 수차례 검사를 나간 적이 있지만 횡령사고를 적발하지 못한 것에 아쉽게 생각한다"며 "다만 금감원 검사가 금융사의 건정성이나 지배구조 등 개별 사안보다 전반적인 시스템을 보기 때문에 개별 거래 건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징계 대상을 둘러싼 당국의 판단에 따라 우리금융그룹과 금융감독원의 갈등이 재확산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누구까지 책임자로 할지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며 "껄그러운 갈등 국면이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