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정국···개정안 통과되기 쉽지 않아
대형은행이 진출 예정인 업계의 반발도 클 듯
현 야당, 여당 시절 인터넷은행법 찬성해
"야당, 강한 반대 어려울 수 있다" 관측도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대형 시중은행 등 신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던 금융사들은 당국의 결정에 반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법률 개정을 통해 금산분리 원칙이 완화되려면 넘어야할 산이 많기에 섣불리 기대하기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전날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개최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포함한 36개의 금융혁신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금융위는 지난달부터 8개 금융권협회를 상대로 수요조사를 해 234개 건의사항을 접수했고, 이를 추려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금산분리란 은행 등 금융 자본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 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을 뜻한다. 이 원칙에 따라 현재 금융지주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은행과 보험사들은 원칙적으로 다른 회사 지분에 15% 이상 투자가 불가능하다.
금융위는 우선 금융회사의 정보기술(IT)·플랫폼 관련 영업과 신기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업무범위와 자회사 투자 제한을 개선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은행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싶어도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더구나 최근 금융의 디지털화로 인해 금융과 비금융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은행들이 IT, 플랫폼 분야로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이유다.
현재 국내 은행 중에서 타 업종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은 KB국민·신한은행뿐이다. 국민은행은 통신업(알뜰폰), 신한은행은 배달앱 사업을 각각 하고 있다. 이마저도 당국이 혁신금융 서비스로 선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 은행은 2년 마다 시행되는 당국의 평가에 통과해야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
금융당국이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은행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체는 일단 반기는 모양새다. 특히 생명보험업계는 상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생보사들은 최근 성장이 침체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확정돼도 야당의 반대로 인해 국회 표결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여소야대의 구도 속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개정안에 반대하면 표결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산분리 완화는 과거 정부에서 추진할 때 마다 시민사회, 전문가들이 크게 반대했기에 야당도 이를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대형 은행이 진출하려고 하는 업권의 반발이 커질 수 있는 점도 개정안 통과를 어렵게할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자 기존의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대자본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2년 후에 있을 총선에서 압승을 한다면 개정안은 쉽게 통과되겠지만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현 정부가 집권 초부터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점도 총선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더구나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때까지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지도 미지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보통 금융산업에 대한 정책은 제조업, 통신업 등 다른 분야의 정책보다 주목도가 떨어지는 편이기에 정부도 금융산업 관련 정책은 후순위로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또 금산분리 완화는 잡음을 일으킬 만한 이슈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금융당국의 정책 의지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야가 예상보다 더 수월하게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야당이 여당일 시절인 지난 2018년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에 찬성한 바 있기에 강하게 반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그간 금산분리 완화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려고 했다. 이에 인터넷은행법이 통과된 후 민주당을 향한 거센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이 이를 의식하면 무조건 반대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정당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법 개정 통과 여부에 대해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라며 "하지만 인터넷은행법이 통과된 적이 있기에 지금 야당이 개정안에 강하게 반대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