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신시가지 13개 단지 재건축 사업 잠정 휴업
尹정부 규제 완화 미루자 안전진단 줄줄이 중단
목동우성 등 인근 노후 단지 리모델링 추진 탄력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 내 정비사업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표 재건축 단지인 목동신시가지는 재건축 사업이 잠정 휴업 상태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 부동산 공약인 ‘안전진단 완화’가 지지부진하자 사업 일정을 미루고 있어서다. 반면 비교적 규제가 덜하고 사업 속도가 빠른 리모델링 사업은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목동신시가지, 안전진단 줄줄이 보류···尹 정부 들어서도 반전 없어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대표 재건축 단지인 목동신시가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안전진단 절차의 속도를 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정부가 집값 상승 등을 우려해 안전진단 규제 완화 시기를 계속 늦추고 있어서다. 목동신시가지는 14개 단지, 2만6629가구 규모로 구성됐다. 1985~1988년 입주해 재건축 연한(30년)을 훌쩍 넘었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을 하기 위한 첫 관문이다. 통상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1차 안전진단(정밀안전진단)→2차 안전진단(적정성 검토)’ 3단계로 이뤄진다. 정밀안전진단에서 E등급(재건축)을 받으면 재건축을 바로 진행할 수 있지만, D등급을 받으면 공공기관(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적정성 검토를 받을 경우에도 D나 E등급을 받아야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목동신시가지는 2018년 14개 단지 모두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적정성 검토 기준을 강화화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적정성 검토에선 구조안정성과 주거환경(주차 대수·층간 소음), 설비노후도(놋물·전기배관) 등을 평가해 재건축 시행 여부를 판단한다. 당시 정부는 구조안정성 가중치를 20%에서 50%로 올렸다. 반면 주거환경은 40%에서 15%로, 설비노후도는 30%에서 25%로 내렸다. 주거환경이 열악해도 건물만 튼튼하면 재건축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규제 강화 이후 안전진단을 모두 통과한 단지는 6단지가 유일하다. 9∙11단지는 적정성 검토에서 고배를 마셨다. 2차 안전진단 단계인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하게 되면 예비안전진단 신청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8∙12단지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적정성 검토 신청을 미뤘다. 1·2·3·4·5·7·10·13·14 등 9개 단지는 적정성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들 단지는 적정성 검토에 필요한 보완 자료 제출을 연기하기로 했다. 현행 기준으로는 탈락할 게 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안전진단 절차의 속도를 늦춘 건 규제 개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통해 안전진단 통과를 쉽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50%에서 30%로 낮추고 주거 환경(15%→30%), 건축 마감·설계 노후도(25%→30%) 등의 배점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당초 안전진단 완화는 국토교통부 시행령 개정 사안인 만큼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집값 상승 우려 탓에 폭발력이 큰 재건축을 후순위로 미뤘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선 이후 규제 완화 방안이 나오면 안전진단 절차를 재개하려고 했지만 발표가 늦어지면서 목동신시가지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모양새다”며 “정부가 정확한 시기를 밝히지 않아 재건축도 기약 없이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기약 없자···속도 내는 리모델링
반면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들은 속도를 내고 있다.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이상이면 사업 진행이 가능하고 재건축에 비해 사업 기간이 짧다. 안전진단 역시 B~C등급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사업 추진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 발표가 늦어지면서 리모델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단지들이 늘었다.
목동신시가지 1단지 맞은편에 위치한 목동 우성은 최근 ‘증축형 리모델링 1차 안전진단 용역’ 공고를 내며 안전진단 절차에 돌입했다. 1992년 입주한 단지는 지하 1층~지상 최고 15층, 4개 동, 332가구 규모다. 올해 1월 조합 설립 이후 지난 5월 GS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바로 옆 단지인 목동 우성2차(2000년 준공∙1140가구)는 지난해 2월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데 이어 12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상태다.
목동한신청구(1997년 준공∙1512가구)와 목동현대(1997년 준공∙972가구)는 리모델링 주택조합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목동한신청구의 경우 동의서를 걷기 시작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동의율이 30%를 넘어섰을 정도로 리모델링 추진에 대한 주민들의 열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 단지는 최근 리모델링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만큼 목동 내에서 리모델링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 첫해인 만큼 급격한 규제 완화로 발생할 수 있는 집값 상승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안전진단 등 규제 완화도 완급조절하며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약이 없는 만큼 준공 20년 안팎의 단지들은 리모델링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