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19일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가결···4년 연속 무분규 타결
임금 인상 부담 보다 전기차 시장 선점 집중
하반기 반도체 공급완화 가능성에 파업리스크로 인한 생산 차질 최소화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임금협상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노조가 역대급 임금인상안을 요구했지만, 현대차는 노조 측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빠른 시일 내 협상 타결을 이뤄냈다.
이는 북미 등에서 현대차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데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시장 선점을 위해 파업 우려 없이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정의선 회장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투표자 3만9125명(투표율 84.3%) 중 61.9%(2만4225명)가 찬성해 가결됐다.
노사는 올해 임협에서 기본급 9만8000원 및 수당 1만원 인상, 경영성과급 300%+550만원, 재래상품권 25만원, 주식 20주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또한 울산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내년 상반기 생산·기술직을 대거 신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노조는 기본급 16만5200원 인상,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으나 노사간 협상을 통해 빠른 시일내 합의를 이뤄냈다.
이번 가결로 현대차 노사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무분규 타결이 이어졌다. 현대차 역사상 4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올해 현대차 노조는 강성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파업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대차 측은 최대한 노조 입장을 반영해 빠른 시일 내 협상 타결을 진행했다. 임금 인상 외에도 국내 전기차 공장 신설 및 신규 인력 채용 등을 통해 노조 요구안을 대부분 수용했다는 평가다.
이는 최근 전기차 시대를 맞아 올해가 현대차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 밀리지 않고 시장 선점을 하기 위해선 물량 공급에 차질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중지 결정에 따라 파업권을 확보한 만큼, 노사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하반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출시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경우 국내 흥행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오닉5는 올 상반기 북미에서 1만3692대를 판매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9%를 달성하며, 폴크스바겐(4.6%), 포드(4.5%) 등 글로벌 주요 자동차 브랜드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전기차 시장이 해를 거듭할수록 눈부신 성장을 보이면서, 현재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에선 현대차그룹 전기차 출고까지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며, 북미에서도 차를 받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미 시장은 정 회장이 지난해 수 차례 직접 방문해 현지 상황을 점검할 만큼 현대차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곳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방문해 전기차 생산 거점을 검토한 것은 물론, 올해 초 열린 뉴욕오토쇼에 참가해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의 전동화 전환 상황과 북미 자동차 시장 동향 등을 살폈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53만대 전기차를 판매해 현지 점유율을 11%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현대차는 올 하반기 첫 전기 세단 ‘아이오닉6’를 한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 출시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북미 시장에도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5만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올 하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 공급 이슈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파업리스크보다는 노조 측 요구를 수용하는게 실리를 취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대란이 장기화되면서 지난달 기준 현대차그룹 국내 백오더(주문대기물량)는 약 110만대, 현대차 글로벌 백오더는 130만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급이 완화될 경우 잔업 및 특근 등으로 공장 가동률을 높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노조와의 원만한 협상을 통해 물량 공급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사가 함께 미래 비전을 공유하면서 국내 공장이 미래차 산업의 선도기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 노사는 오는 21일 울산공장에서 올해 임협 조인식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