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상태 관련 객관적 자료 확보 목적···소송 지연 우려도 의식한 듯
1심, 정신감정 없이 의견서만으로 청구 기각···후계구도 갈등 불씨 남아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 사진=연합뉴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조양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심판 항고심 재판부가 국내 주요 병원 4곳에 정신감정이 가능한지 일괄 확인했다. 소송관계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확보함과 동시에 병원 선정 과정에서 소송 지연을 최소화하겠다는 재판부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고3부는 최근 국립정신건강센터,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4곳에 의견제출 요청서를 발송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들 병원에 조 회장에 대한 정신감정 진행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가사소송법 제45조의2는 가정법원이 성년후견 개시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할 경우에는 피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의 정신상태에 관해 의사에게 감정을 시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 사건에서 정신감정은 필수이고, 대부분 사건에서 정신감정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의 정신상태를 판단할 만한 다른 ‘충분한 자료’가 있는 경우에만 감정을 배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1심은 기존에 제출된 조 명예회장의 과거 진료기록을 토대로 사건 당사자들이 각자 지정한 전문가의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하고, 정신감정 없이 조 명예회장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역시 병원 4곳에 정신감정을 촉탁했지만, 해당 병원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을 이유로 ‘감정 진행 불가’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병원 선정 과정에서 1년 가까이 심판청구 절차가 지연되기도 했다.

청구인 측은 정신감정 없이 이뤄진 기각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항고했다. 항고심이 사건본인(조 명예회장)에 대한 정신감정 진행에 적극적인 배경이다. 항고심 재판부는 청구인과 사건본인, 참가인 등 소송관계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정신감정을 꼭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해졌다.

재판부의 요청을 받은 병원 4곳 모두 최근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청구인 측은 답변서 내용을 파악해 후속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정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성인이 가정법원의 결정으로 선임된 후견인을 통해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에 관한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제공받는 제도다.

조 명예회장의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지난 2020년 7월 ‘아버지(조 명예회장)가 자신이 가진 회사 지분 전체를 차남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당시 사장)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승계 결정을 내린 게 자발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이번 심판을 청구했다.

이 청구는 조 회장의 후견인을 지정해 달라는 것이지만,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으로 확산할 여지가 있다. 법원 결정에 따라 조 이사장이 아버지의 ‘주식 전부 매각’을 취소해 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업계 전망도 있다.

한편, 조 명예회장과 장남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은 최근 세무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들은 재산을 해외에 은닉하고 금융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40억원대 세금을 부과받자 행정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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