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조합장, 17일 조합원들에 사임 의사 밝혀
공사 중단·대주단 대출 거절 이후 부정 여론 진화 나선 듯
비대위 “집행부 유지 위한 꼼수 사퇴, 해임 절차 계속 추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 현장에 시공사업단의 공사중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공사업단은 지난 15일부터 공사 중단을 한 상태다. 공사비 증액 등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의 EOD로 극적 타결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에 공사중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업시공단은 지난 4월 15일부터 공사 중단을 한 상태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새로운 대주단에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조합장이 다음달 사업비 대출 만기를 앞두고 돈을 빌려줄 대주단을 구했다고 밝혔지만, 대주단 구성과 대출 금리·조건 등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까지 밝히지 않아서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불분명한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인 게 아니냐는 우려감과 함께 대주단의 실체가 없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주단을 구했다는 발표 이후 사흘 만에 조합장이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의구심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1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김현철 둔촌주공 조합장은 전날 “오늘부로 조합장직을 사임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조합원들에게 발송했다. 이어 “오로지 6000명 조합원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제 제 역량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현 조합 집행부가 모두 해임된다면 조합 공백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돼 조합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제 제가 결심을 하고자 한다”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김 조합장이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힌 건 사업 지연으로 인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특히 만기가 돌아오는 사업비 대출 상환 문제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NH농협은행 등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둔촌주공 기존 대주단은 조합에 다음 달 23일 만기가 도래하는 7000억원 규모 사업비 대출 연장 거절을 통보했다. 조합이 시공사업단을 상대로 계약 무효 소송을 진행하는 등 사업 추진을 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거절 사유다. 이에 따라 조합원 1명당 약 1억원이 넘는 금액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조합 집행부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됐다.

최근 김 조합장이 새로운 대주단을 통해 사업비 대출을 확정해 만기 상환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집행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김 조합장은 지난 14일 조합원들에게 “여러분께서 걱정하고 있는 8월 23일 만기 예정인 7000억원의 만기 상환 방법이 마련됐다”며 “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비대출 관련 최종 확정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규 대주단 구성과 대출 금리, 조건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 조합 내부는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조합원들은 불분명한 정보에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시공사 보증이 없고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어느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주냐는 것이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외국 자본이나 사채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김 조합장이 문자 메시지에서 “금융 시장이 경색돼 있는 점, 시공사 보증을 받을 수 없는 점, 둔촌 현장이 공사 중단 상태인 점 등 때문에 유리한 대출 조건 실행은 어려웠다”고 밝힌 점도 논란을 키운 요인이다.

일각에선 새로운 대주단의 실체가 없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동안 기존 대주단이 NH농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 등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만큼 사실상 국내 금융사를 새로운 대주단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기존 금융사가 다시 들어가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조합장이 사업비 대환대출 계획을 밝힌 지 사흘 만에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가 쏠리는 배경이다.

/ 그래픽=시서저널e DB
/ 그래픽=시서저널e DB

조합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조합 관계자는 “소문처럼 외국계 사모펀드나 이상한 회사가 들어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새로운 대주단과 접촉한 건 맞으며 모두 국내 금융기관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금융기관에서 대출 관련한 제안을 한 상태고 향후 내부에서 검토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대주단을 찾았더라도 사업비 대환대출 계획은 추진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련 안건이 총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둔촌주공 정관엔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율 및 상환 방법 등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사업비 대환대출은 기존 7000억원 외에 추가로 1000억원을 빌리는 데다 시공단의 연대보증도 없어 조합원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총회 의결이 필수다. 김 조합장 역시 문자 메시지에서 “대출조건을 총회 책자에 상세히 기술할 예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공사 중단과 대주단 대출 거절 사태 이후 조합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통과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업비 대출대환이 추진되지 않을 경우 건설사가 대위변제를 하고 향후 조합 측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조합은 사업 소유권을 시공단에 빼앗기게 된다. 시공단 관계자는 “현재 대출 상환을 위한 7000억원을 준비한 상태다”며 “만약에 대출대환이 아닌 대위변제가 실행될 경우 추후 조합 측에 공사비와 사업비, 이자 등을 포함한 비용을 청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조합장의 사퇴 이후 공사가 재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조합 집행부 전원에 대한 해임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의 비대위 격인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 위원회는 공사 중단에 반발해 집행부 해임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해임안건 발의를 위한 노조원들의 발의서를 모으고 있다. 정상위는 지난 13일 시공단과 공사 재개를 위한 협의체까지 구성해 기존 조합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위 관계자는 “조합장이 사퇴했지만 최근 큰 논란이 됐던 8000억 대출건에 대해 아무 해명이 없고, 다른 논란이 됐던 부분도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없다”면서 “현 조합 집행부의 자리 보존만 신경 쓴 ‘꼼수 사퇴’다”며 집행부 전원에 대한 해임 절차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어 “해임 안건이 통과될 경우 2개월 내 새로운 집행부를 뽑을 것이다”며 “시공단과 협의를 거쳐 10~11월에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1동 170-1번지 일대에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임대 1046가구 포함) 규모의 아파트와 부대시설을 짓는 사업으로 일반분양 물량만 4786가구에 달한다. 공사비 증액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 4월 15일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면 그간 쟁점이 됐던 사안들에 대해 견해 차이를 좁히는 듯했지만 상가 분쟁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 공사 중단 사태가 3개월을 넘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집행부 해임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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