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저택과 독립운동가 흙집 비교···“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닐까”
태극기 그리고 만세운동 한 조병진 선생 후손 거주···태형으로 장애
독립유공자·시민단체 등 고소·고발···檢 “피해자 특정 안 되고 의견·논평 불과”

만화가 윤서인씨. / 사진 =연합뉴스
만화가 윤서인씨. / 사진 =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검찰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친일파와 비교해 비하하는 글로 고소고발된 만화가 윤서인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윤씨의 글만으로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내용 역시 의견표명이나 논평에 불과하다고 봤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검사 이지연)는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닐까”라는 글과 사진을 게시해 서울강남경찰서에서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윤씨의 정보통신망법(명예훼손) 위반 및 모욕죄 혐의 사건을 지난 8일 불기소처분(증거불충분)했다.

윤씨는 지난해 1월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의 저택과 독립유공자 후손의 낡은 주거를 대조한 사진과 함께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다.

글 속 흙집 사진은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수행하던 비영리단체 H가 독립유공자 후손 주거개선 캠패인을 하면서 인터넷에 게시했던 사진이었다.

이 집은 1919년 태극기를 제작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조병진 선생의 후손이 거주하는 집으로 밝혀졌다. 조 전생은 보안법위반으로 기소돼 태형 90대와 고문을 당한 뒤 장애를 가지게 됐다. 출옥 후 지역에서 계몽운동 등의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 1961년 7월16일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이에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같은 달 윤씨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윤씨를 고발했다. 이후 독립유공자와 후손들로 구성된 ‘광복회’ 회원 463명도 윤씨를 고소했다.

/ 사진=윤씨 페이스북 갈무리
/ 사진=윤씨 페이스북 갈무리

◇ 윤씨 “비영리단체 비판하려고 반어법 쓴 것”···검찰 “범죄요건 성립 안 돼” 판단

검찰의 불기소이유서에 따르면 윤씨는 수사기관에서 ‘H사의 캠페인이 독립운동가를 남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선동한다고 생각되어 H사를 비판하고자 반어법으로 글을 게시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특정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검찰은 윤씨의 주장을 상당부분 받아들였다. 검찰은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고소인들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는 집단표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글과 사진만으로는 사진상 집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고, 윤씨가 글을 게시하면서 사진과 관련된 특정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을 인식했다고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검찰은 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을 띤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한다며 윤씨의 글만으로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검찰은 “피의자(윤씨)의 개인적인 의명표명이나 논평에 불과하다”고 봤다.

검찰은 같은 이유로 윤씨의 ‘모욕’ 혐의 역시 불기소 처분했다. 검사는 “고소인들을 불쾌하게 할 수는 무례한 표현으로 볼 수는 있다”면서도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인 언사에 해당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 고발인 “고의 분명한데 검찰 처분 아쉬워···피해자 항고 의사 중요”

사법시험준비생모임 권민식 대표는 “경찰이 사실의 적시와 고의성을 인정했음에도 검찰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 같아 아쉽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한 사건이다”며 “피해자가 항고할 경우 이를 조력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광복회 고문변호사인 정철승 변호사는 “검찰은 대한민국헌법에도 명시된 3.1운동 정신을 훼손한 윤씨에게 온정적 판단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윤씨는 우발적으로 실언을 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독립운동가를 비난하는) 일종의 영업범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게 된다면 역사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검찰 처분이유를 검토해 대응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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