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출범 이후도 상당수 자리 지켜···당정, 민주당 관련 기관장 정조준
경평·재무위험 선정 등 통해 압박 관측···거론 기관 내부 “교체 어려울 것”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상당수가 사실상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정부와 여당이 본격적으로 거취 압박에 나서고 있다. 여권 핵심부에선 기관장 자리를 밥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단 격앙된 반응을 내놓는 가운데 재무상황 등 기관 평가를 활용해 거취 압박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치적 메시지 외 수단이 마땅찮은 점이 여권 내부의 고민인 가운데 교체 가능성이 점쳐지는 공공기관 내부에선 기관장 사퇴 가능성을 낮게 보는 기류가 감지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체 공공기관 370곳 중 임기 만료 등으로 올해 교체 예정인 70여곳을 제외한 상당수 기관장은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상당기간 재직이 가능한 상황이다.
전 정부 시절 형사처벌을 받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현재 수사 중인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인해 정권이 공공기관장에게 사퇴를 강요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란 게 일반적 관측이었다.
실제 20대 대선 이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경우는 드물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과 김용진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정도가 새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이 버티기 양상을 보이면서 최근 당정 내에서 전 정부 시절 임명한 인사들에 대한 사퇴 필요성을 언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에 대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란 점을 들어 비판한데 이어 국민의힘도 전 정부 성향 기관장에 대한 거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이석현 민주평통 부의장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신 기관장을 주로 겨냥하는 가운데 현 정부 국정철학과 결이 다른 공기업 수장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공기관장 중에도 정치인 출신, 민주당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국마사회와 한국농어촌공사 등 찾아보면 많이 있다”며 “기관장이나 감사 등 이 사람들 대부분 (국정철학 등에 있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이 버티기에 나서면 사실상 방법이 없는 게 아니냔 질문엔 “그렇다. 직권남용이 아니라 어찌됐든 (현정부 국정철학과 맞지 않는 기관장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 나도 주장하는 것”이라며 “양심이 없는 처신으로 자기들 생계수단으로 있는 것이다. 그 자리가 생계수단으로 있을 자리인가”라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전정부 성향 공공기관장에 대한 거취 압박이 더욱 거세지겠지만 대놓고 압박하기 보단 은근하게 진행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는다. 구체적으로 평가라는 잣대를 통해 전정부 인사를 걷어낼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발표한 2021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재무위험기관 선정 결과 옐로카드를 받은 기관 수장 상당수는 야당 성향 인사로 꼽힌다. 경영평가 미흡 이하 등급을 받고 재무위험기관에도 선정된 공기업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4곳이다.
나희승 코레일 사장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협력분과위원회 상임위원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을 지냈다. 지난해 11월 코레일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 남북철도 개통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김현준 LH 사장은 문재인 정부 국세청장을 지냈으며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문재인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역임했다.
기업인 출신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전 정부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들 중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채 사장 외에는 모두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상태다.
이밖에 정기환 마사회장은 문재인 전 정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전 정부에서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산업부 차관을 역임했다.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사장은 민주당 지역위원장 경력, 원경환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경력을 각각 갖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평이나 재무 부실 지적을 받은 기관장에 대한 사퇴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해당 기관 내부는 차분한 분위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LH 관계자는 “기관장 사퇴 관련해서 내부에선 나오는 얘기는 없다”며 “경영평가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직원들이 직원들이 열심히 했지만 좋은 결과를 받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지만 지난해 LH 사태가 워낙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어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 문제로 정부가 기관장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이진 않는단 설명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장 사퇴 얘기는 전혀 없다. 우리 사장님은 이번 평가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 기관장이 야당 성향이다 보니 정부와 호흡이 안맞을 것이란 걱정은 있으나 대놓고 나가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기 전 물러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