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 인터뷰
“서버용 1페타플롭스·엣지형 수TOPS 저전력 반도체 개발 목표”
“인재 양성 핵심···석박사·학사급 인력 부족 실태 파악 먼저 이뤄져야”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미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점수가 100점이라면 우리나라는 80점 수준이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보다 앞서 있는데, 따라잡기 위해서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HPC), 이미지 분류와 자연어 인식 등에서 탁월한 성능을 내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30와트(W) 정도의 저전력으로 1초에 1000조번 연산하는 1페타플롭스(PF) 성능의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세계 주요국과 글로벌 기업들이 저전력·고성능 AI 반도체 기술 연구에 나선 가운데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인간의 뇌가 소비하는 전력 수준(20W)으로 빠른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는 게 핵심이라고 4일 밝혔다. 에너지 소모량과 반도체 부피를 줄여 효율성과 경제성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은 반도체 중장기 발전 로드맵 수립과 산학연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난 2020년 9월에 출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029년까지 이 기관에 총 1조96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최근 5년간 1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 사업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이 유일하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의 수장인 김 단장은 우리나라 글로벌 반도체 1위 도약에 일조하는 게 사업단 목표라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교수 충원, 수도권 규제 개선 등을 통한 반도체 인재 양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단장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와 시스템IC2010사업단장,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SK하이닉스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김 단장과의 일문일답.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이 출범 3년차를 맞았다. 그간 활동을 평가한다면
사업 골격을 갖추고 밑바탕 작업을 한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출범식은 2020년 9월에 열렸지만 사업은 그 전인 4월부터 시작됐는데, 그 때부터 3년에서 길게는 7년짜리 과제를 선정했다. 현재 진행중인 과제 143개 중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면 51개가 끝나 92개가 남을 예정이다. 연말쯤 되면 성과가 일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중에서 사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 내년에 신규 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반도체 기술은 트렌드가 굉장히 빨리 바뀌기 때문에 어떤 아이템을 선정해야 하는지 기획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제 수행 컨설팅과 결과물을 잘 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업단 역할이다.
-사업단 운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사업비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업단에는 소자, 인공지능반도체 설계, 상용반도체 설계, 제조장비 등 4가지 분야가 있다. 사업비는 차세대 반도체 R&D뿐만 아니라 실제 양산까지 가능하도록 30% 정도는 대학이나 연구소, 70% 정도는 산업체에 배정되고 있다.
-각 분야의 사업비는 어떤 업체에 지원되고 있나.
소자 분야 지원 대상은 주로 대학이나 연구소다. 인간의 뇌 구조를 닮은 뉴로모픽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차세대 신소자 원천 기술이 필요하다. 기존 NPU는 시모스(CMOS·상보성 금속 산화막 반도체) 소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자기저항메모리(M램)나 저항메모리(R램) 등 새로운 소자를 연구한다.
인공지능반도체 설계 분야 지원비는 AI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와 SK텔레콤에서 분사한 사피온 등에 투입됐다. 퓨리오사AI는 ‘워보이’ 차세대 버전, 사피온은 추론을 할 수 있는 ‘X330’ 등을 연구하고 있다. 내후년쯤에는 새 버전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상용반도체 설계 R&D 지원은 텔레칩스나 넥스트칩 등 팹리스 기업에 이뤄지고 있다. 상용반도체 칩에 AI 기능을 집어넣어 자율주행차 등에 투입되는 반도체를 고도화하는 게 목표다.
제조장비 R&D를 지원하는 기업은 테스, 피에스케이, 원익IPS 등 장비사다. 가령 차세대 낸드플래시의 경우 176단을 뛰어넘어 600단, 1000단 이상 적층 필요성이 거론되는데, 이를 위해 새로운 장비 기술이 있어야 한다. 사업단은 여기에 필요한 공정이나 테스트 장비를 지원한다.
-AI 반도체 분야에서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의 궁극적 목표는
고용량이 요구되는 서버용이나 HPC는 30W에서 1PF 연산 성능을 갖춘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다. 1초에 1000조번 연산하는 1PF 반도체는 지금도 구현 가능하지만, 여러 개의 NPU를 합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력 소모량과 비용이 늘어나고 크기도 커져 비효율적이다. 이세돌 9단과 맞붙은 알파고의 전력 소모량은 170킬로와트(kW)인데, 인간의 뇌는 0.02kW의 에너지를 쓴다. 알파고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1200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700개 탑재됐지만, 인간의 뇌만큼 전력을 사용하면서 연산이 빠른 NPU를 개발해야 경쟁력이 있다.
엣지형 NPU는 드론이나 자율주행차에 주로 들어가는데, 이 제품의 경우 1밀리와트(mW)로 1초에 1조번 연산하는 수TOPS(Tera Operations Per Seceond·1초당 수조번 연산) 반도체 개발이 목표다.
-우리나라 AI 반도체 기술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평가하는가. 또 AI 반도체 산업 육성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100점이라면 우리나라는 80점 수준이다.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라 반도체 기업의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다. 지금은 시스템반도체에서 AI 반도체 비중이 5% 내외로 한 자릿수지만, 2030년이 되면 절반 이상으로 올라간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분야를 육성할 수밖에 없다.
AI 반도체는 데이터 응용이나 서버 운영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국 엔비디아나 구글, 아마존, 테슬라, 메타(구 페이스북) 등이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퓨리오사AI나 사피온은 신생업체여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이미지 분류 속도나 자연어 인식과 처리 등에서 특화된 성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떤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재 양성이다. 투자나 자금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나 류수정 사피온 대표를 만나도 인재가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특출난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키워야 한다.
-최근 반도체업계에서도 인재 양성이 화두다.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먼저 반도체 인력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R&D를 할 수 있는 석박사 이상 인력이고, 두번째는 단순 제조·설계 등에 필요한 학사급 인력이다. 지금은 전자와 후자를 섞어서 반도체 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양상 방안을 논하기에 앞서서 어느 쪽이 더 많이 부족한지 확실하게 실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
석박사급 인력은 대학교 교수가 충원돼야 늘릴 수 있다. 내가 교수로 재직할 때 대학원생을 가장 많이 지도한 인원이 최대 2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교수가 부족해 서울대 교수 1명이 70명 이상을 가르친다. 교수 정원 확대는 결국 재정적인 문제로 연결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교육부를 설득해 예산을 늘리고 교수를 더 채용해서 석박사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학사급 인력 충원은 수도권 대학 정원을 확대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또 지방 거점 국립대 교육의 질을 향상해서 반도체 학부생을 양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도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어떤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마이크론, 퀄컴, 인텔 등 자국 반도체 기업에 지원하는 정부 자금은 세제혜택에 집중돼 있다.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중국을 제외하면 지원책은 대부분 세제혜택이 주류다.
우리나라 정부도 세제혜택을 많이 제공하는 방향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야 한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국한할 게 아니라 외국 기업에도 획기적인 세제혜택을 줘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유치 활동을 해야 한다. 램리서치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국내에 R&D 시설을 구축했거나 건설할 예정인데,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면 반도체 생태계 확장 차원에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