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금융당국, 은행권에 연일 쓴소리
'반복되는 관치금융' 비판도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국내 은행들이 연 3% 이상의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출시하는 반면, 대출 금리는 내리고 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연일 은행에 대해 과도한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내린 결정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말 한 마디에 금리가 바뀌는 모습은 ‘관치 금융’ 행태가 반복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지난 1일 '창업 40주년'을 맞아 특판 상품인 '신한 40주년 페스타 적금'과 '신한 S드림 정기예금'을 출시했다. 두 예금 모두 한도가 정해진 특판상품으로 페스타 적금은 최대 연 4.0%, S드림 정기예금은 최대 연 3.2%의 고금리를 제공한다. NH농협은행도 오는 11일에 우대금리 0.4%포인트를 포함해 금리가 연 3%대인 정기예금 신상품을 출시할 방침이다.
이미 출시된 고금리 예금 상품도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우리은행은 최고 금리가 연 3.20%인 '2022 우리 특판 정기예금'을 2조원 한도로 내놨는데 불과 6일 만에 소진됐다. 이에 같은 달 28일 한도를 두 배인 1조2000억원으로 늘렸지만 1일 현재 한도까지 1437억원만 남아있는 상태다. 케이뱅크가 같은 달 17일 출시한 연 5.0% 금리의 '코드K 자유적금' 10만 계좌도 10일 만에 모두 팔렸다.
반면, 은행들은 대출금리의 경우 금리 상승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낮추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이르면 이번 주(4∼8일) 대출 금리를 추가로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지난 4월 신한은행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10∼0.25%포인트 내린 바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미 지난 1일부터 담보, 전세자금 등 주택관련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 낮췄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24일부터 은행채 5년물 기준 고정금리 대출에 적용하던 1.3%포인트의 우대금리(은행 자체 신용등급 7등급 이내)를 모든 등급(8∼10등급 추가)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케이뱅크도 같은 달 22일 대출금리를 최대 연 0.41%포인트 인하했다.
은행이 예·적금 금리를 올리는 반면 대출 금리는 낮추는 이유는 정치권·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0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리 운영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지속해서 높여 나가야 한다"며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28일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민생물가안정특위 회의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만 올려도 대출이자 부담이 6조7000억원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며 "금융기관들이 예대마진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없도록 자율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했다.
최근 은행의 예금과 대출금리의 격차(예대마진)은 크게 벌어지면서 은행의 영업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기준 예금은행의 대출 잔액 기준 총수신(예금) 금리는 1.08%, 총대출 금리는 3.45%로 예대마진은 2.37%포인트를 기록했다. 2014년 10월(2.39%포인트)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예금과 대출금리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관치 금융’이란 비판이 나온다. 당국의 말 한마디에 은행이 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처사란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차주들의 부담을 생각했을 때 대출금리를 조정할 필요는 있다”라며 “다만 당국의 개입으로 은행들이 마지못해 금리를 내리는 것은 관치 금융이 반복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