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상승에 법제화 필요성···정부, 8월 이후 하반기 시범 운영 전망
법제화 움직임 탄력···“물가 상승 우려 vs 기울어진 시장 상황상 불가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납품업체가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단 주장이 나온다. 납품업체가 위탁기업에 단가 인상을 쉽게 요구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을 감안했을 때 제도 도입이 필요하단 주장과 함께 국회에서도 법제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납품가격연동제가 사실상 가격통제로 작용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단 반론도 있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단 지적도 제기된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영세 제조업체 상당수는 오른 원자재 비용을 납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업계 관계자는 “원자재가 가격이 많이 오르고 수급도 불안하다 보니 중소기업들이 경영난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며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위탁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체 309곳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원재료 가격은 1년 전보다 평균 47.6% 오른 반면 납품단가 상승률은 10.2%에 그쳤다고 응답했다.  인플레이션 외에도 향후 탄소중립 정책을 실현하면서 비용 상승에 대한 비용이 납품업체로 전가될 우려가 제기된다.

현행 상생협력법에는 중소기업 부담을 낮추기 위한 납품대금조정협의제가 있다. 하지만 요건이 복잡하고 납품업체들이 대기업과 거래 단절을 우려하는 이유 등으로 인해 집행이 저조한 실정이다. 이에 원사업자와 하청업체 간 하도급 거래 과정에서 원자재값이 변동하면 이를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토록 하는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으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납품단가연동제 대신 모범계약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계약시점의 원자재 시세를 기준으로 가격 변동을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납품가격연동제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올 하반기에 납품가격연동제를 시범 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과 기업의 수용성이 높은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지금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표준약정서가 8월 정도에 나올 것 같다. 그래서 시범 운영은 8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 입법 얘기도 나오는데 법제화하는 것은 어떤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기에 굉장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시범 운영을 통해 입법 과정에서 부작용 없는 설계를 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도 관련 입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법제화를 약속했으며, 더불어민주당도 전날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입법 토론회를 열고 연내 입법을 약속했다. 현재 국민의힘 한무경, 김정재, 강민국 의원과 민주당 김경만, 정태호 의원이 각각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관련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각 법안들은 큰 틀에 있어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변동시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원자재 가격 변동 폭이나 미이행 시 처벌규정 등 세부사항에 있어선 법안 간 다소 차이가 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 의지가 강하지만 납품단가연동제가 사실상 가격 통제로 작용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원자재나 부품을 살 때 기업들의 협상력이 달라 비용이 제각각이다. 사정이 다른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면 전형적인 가격규제가 돼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며 “이런 규제들이 늘어나게 되면 해외 거래선으로 변경하게 되는 사례도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오히려 더 피해가 가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제화 보다는 현재 시행 1년 정도 밖에 안 된 조정협의제도를 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표준계약서를 만들되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단 설명이다. 류 팀장은 “납품단가연동제가 도입된다면 연동제로 납품단가가 올라간 부분이 소비자가격에 바로 반영되면서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10% 상승한 원자재 가격이 납품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제품에 대한 대기업 수요는 1.45% 감소하고 해외 중기 제품에 대한 수요는 1.21%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일자리는 4만7000명이 줄어들고 소비자물가지수는 14% 증가한다고도 봤다. 

다만, 중소기업 업계에선 기울어진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는 걸 무분별한 개입이라고 보긴 어렵단 입장이다. 해외 거래처 전환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란 분석이다. 이종건 중기중앙회 부부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전세계적 상황인데 해외 거래처가 가격이 저렴하단 보장은 없다”며 “과거 일본 수출규제 사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해외 거래처는 정책이나 여러 이슈로 인해 상당히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그저 가격이 싸다고 해외 거래처로 쉽게 옮기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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