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 안정 위해 임금 억제 필요성 제기···앞뒤 뒤바뀐 진단 비판
“자산가쪽 소비로 인플레 상황···하투 전 금리 등 강력 물가 안정책 시급”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임금 인상 억제가 필요하단 입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임금이 물가에 일부 영향을 주는 부분은 있으나 인플레이션 안정 방안으로 임금을 고려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산양극화로 인한 물가 불안을 주목하고 노동계의 하계투쟁 이전에 금리인상 등 확실한 물가 안정 시그널을 내놓아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재계 단체를 만나 물가 안정을 위해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추 부총리 발언은 임금과 물가가 서로 자극하면서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또 대기업 등 잘나가는 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이 이뤄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근로 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단 시각도 담겼단 분석이다. 실제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10% 안팎의 임금 인상에 나서면서 올 1분기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50.6%에 그쳤다. 지난해 59.4%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다만, 인금인상 억제가 실제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임금과 물가가 서로 자극하면서 상승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단 주장과 함께 비용상승 요인이 임금인상만 있는게 아니고 인건비가 오를 경우 기업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고용량을 조정하는 등 다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 임금과 물가의 상관관계가 적단 의견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임금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된 게 아니다. 물가가 먼저 오르면서 임금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며 “임금을 물가 해법으로 보는건 앞뒤가 바뀐 것이다. 다만, 임금이 오르면 다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악순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15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10% 올렸을 때 전체 임금은 약 1% 상승하며, 이에 따라 물가는 0.2~0.4%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분석 시점인 2006~2011년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평균 3.5%인 상황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치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산업별로는 농림어업과 서비스업 등 저임금근로자의 밀집도가 높은 산업의 물가상승 정도가 제조업 등 다른 산업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은 주로 저임금근로자가 받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현재 인상속도가 가파른 대기업 근로자와 관련한 산업의 물가 상승도 예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당시 노동연 전문위원으로 연구논문을 작성한 강승복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차장은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최저임금 대상이 아닌 나머지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수준만큼 임금이 오르는 건 아니다. 인건비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생산요소는 인건비 외에 원자재 등 다른 부분도 많다”면서도 “전체 근로자 임금이 1% 오를 때 물가가 0.2~0.4% 상승한다는 건 20~40%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적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과 달리 평균 임금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단 분석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의 경우 과도하게 빨리 오르면 물가가 올라가는 효과는 분명 있다”며 “하지만 평균 임금이 오른다고 물가가 그대로 따라간다고 보긴 어렵다. 올라봤자 공공요금 인상 수준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물가 문제는 소득양극화보다는 자산불균형에서 야기된 측면이 더 크단 지적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을 많이 가진 자산가 쪽에서 소비가 만들어지면서 물가가 오르는 상황인데 정부는 소득양극화를 먼저 본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인상을 억제해 물가를 잡겠단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단 비판이다. 강 교수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 행정부가 물가와 임금 통제 전략을 썼는데 당시엔 통제됐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올랐다. 시장을 제어하는 쪽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물가를 잡으려고 노력해야지 임금을 잡으려고 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임금 인상에 관여하는 건 말이 안된다. 임금은 노사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경영자단체에 가서) 임금 얘기가 아니라 투자를 많이 하고 물건값을 가급적 오르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강 차장은 “인건비 외에도 원자재 도입 구조 다양화 등 물가를 낮추기 위한 방법은 있다”며 “무턱대고 임금을 동결하면 실질임금 하락이기에 임금 근로자에게 좀 가혹하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최선의 물가 안정책은 금리인상이란 조언이다. 강 교수는 “당장 이자율 인상 속도를 더 빠르게 가야 한다. 물가를 빨리 잡지 않으면 악순환이 될 수 있다”며 “하반기 노동계의 하계 투쟁이 시작되면 본격적 임금 상승으로 갈 수 있다. 그 전에 물가를 빨리 잡을 것이란 피드백을 정부가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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