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회서 정부·업계·학계, 스타트업 노동정책 개선안 논의
업계 “스타트업 업무 수시로 변동···업무 특성 고려해야"
"日·獨처럼 연장근로시간 '연단위 총량제'로 관리 필요"

[시사저널e=염현아 기자]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의 개편 방향을 발표하자, 벤처 업계도 노동정책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업계 특성을 고려해 기존 제조업 생산직 기준에 맞춰 짜인 노동규제 완화를 주장해온 만큼, 디지털 산업 성장을 위해 본격적인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빠르고 유연한 스타트업 환경에 맞는 노동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1월 중소벤처기업 6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계가 바라는 최우선 차기 대선 공약으로 ‘주 52시간 근로제 개선 등 노동개혁’이 가장 높은 비율(42.7%)을 차지했다. 규제개혁(36.5%), 금융개혁(35.5%) 등이 뒤를 이었다. 현행 노동규제가 디지털경제에 최적화된 스타트업 업계에는 맞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벤처 업계가 바라는 최우선 차기 대선 공약(2021년 11월 발표)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업계는 제도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국내 1900개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디지털 산업 고용촉진을 위한 노동규제 개선 방안 토론회’를 열고 정부, 학계, 업계 전문가들과 스타트업에 맞는 노동정책 개선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과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최성진 코스포 대표는 “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현재 노동규제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며 “노동자의 권리, 삶의 균형을 지키면서 스타트업이 혁신성장을 할 수 있도록 맞는 옷을 입혀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벤처창업학회장을 맡고 있는 전성민 가천대 경역학부 교수가 발제를 진행했다. 전 교수는 앞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스타트업 고용 촉진을 위한 노동정책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도 참여했다.

전 교수는 수시로 변동되는 스타트업 업무 특성을 고려해 업무 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은 사업 기획, 프로그램 개발, 고객 피드백, 개선이 수시로 이뤄지는데, 개별 직원의 업무 시간을 예측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특히 투자 유치나 신제품 출시 등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기업의 성패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이하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소규모의 초기 스타트업들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으로 제한됐다. 재택, 자율, 원격 근무 등 다양하고 자율적인 근무 환경으로 작동하는 스타트업에게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많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도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한정된 자본으로 제품을 빠르게 먼저 상업화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유일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최 센터장은 "스타트업이 근로제도를 지키려면 사전계획이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해결과제들이 수시로 발생해 초단기적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풍부한 자본이 있는 대기업은 업무 시간과 문화를 시스템을 통해 바꿀 수 있지만, 자율 책임 하에 조직문화로 작동하는 스타트업들에게는 요건과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고 분석했다.

해외 국가들의 벤처업계 노동시간 제도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업계는 해외 선진국들의 제도를 노동정책 개선안으로 제시했다. 우선 자율적 시간관리가 가능한 스타트업 업계는 근로시간규정에서 예외 적용해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의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제도와 일본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일정 연 소득 이상의 근로자는 스스로 근로시간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근로시간규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자율적인 근무를 보장하는 영국의 '옵팅 아웃(Opting out)' 제도도 함께 대안으로 제시됐다. 

업계는 특히 '연장근로시간 총량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연장근로시간을 주 12시간 단위로 관리 중인데, 이를 연단위로 확대해 총량제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일에서는 6개월 내에 조절할 수 있고, 일본은 1년에 60시간 등 월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하고 있다. 전 교수는 "노사합의에 따라 한 달에 50시간, 1년에 600시간 한도로 연장근로시간을 총량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시간 노동에 대한 위험 시그널 우려로, 일률적 노동규제 완화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왔다. 

이동원 중소벤처기업부 일자리정책과 과장은 "연장근로 총량관리를 통해 스타트업들이 편하고 쉽게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부작용 방지를 위해 총량 근로감독과 상호 보완이 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스타트업 근로제도를 유연하게 풀되 전체적으로 푸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창업 업력, 분야, 규모 등 유연화할 대상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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