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둔화 조짐 장기화 가능성···“경제 선순환 구조 끊어 우려되는 상황”
미래 유망 품목 발굴 필요성···“시스템반도체·기초과학 투자 장려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우리나라의 버팀목인 수출이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래 유망 수출 품목을 발굴해야 한단 지적과 함께 정보통신기술(ICT)분야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우리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수출마저 둔화 조짐이 나타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왔으나 이달엔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거나 한 자릿수 증가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수출 둔화가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수출기업 130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3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94.4로 조사됐다. 지수가 100 아래면 향후 수출여건이 나빠질 것으로 본다는 의미로 2분기(96.1)보다 악화된 수치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 기업의 수출 환경에 악재로 작용한단 분석이다.
반면 수입은 유가, 원자재 값 폭등 등 수입물가 상승으로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3월부터 무역수지는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달 1~20일 무역수지는 76억4200만 달러,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수지는 154억6900만 달러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무역적자는 가뜩이나 불안한 환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수출 둔화는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수요에 더해 수출이란 해외 수요가 창출되면 국내 생산능력을 풀가동하게 된다. 해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공장을 돌리면서 고용이 창출되고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근로소득이 생기는 선순환구조가 된다”며 “우리나라처럼 개방경제인 국가가 수출의 장기적 추세가 꺾이면 이러한 선순환이 끊기게 된다”고 말했다.
해외 수요가 없으면 국내 생산능력을 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이로인해 신규투자나 고용이 끊기면서 소득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단 설명이다.
현재 수출 효자 품목에 만족하지 말고 향후 국내 수출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유망 품목에 대한 발굴과 지원이 필요하다. ICT와 바이오헬스,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주목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ICT는 우리나라 무역 환경에서 우호적임과 동시에 시장 선점 단계에 가장 먼저 다다랐단 분석이다. 바이오헬스는 불확실성이 있어 향후 판로개척과 유망품목 등의 발굴에 투자 확대가 필요하고, 신재생에너지는 세계적 추세로 수요 증가가 기대돼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단 조언이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바이오헬스와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ICT는 수출 유망 여부를 따지기 전에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중에서도 특히 ICT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분야를 보면 지금 메모리 분야는 잘 하고 있지만 종합적 생태계가 완벽하게 이뤄진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어느정도 한계에 왔단 지적이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아직도 크다”며 “특히 4차산업 관련된 인공지능(AI) 관련해서는 반도체 능력 향상이 굉장히 중요하기에 반도체 전체를 사양산업으로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장 수출 실적에 급급할 게 아니라 장기적 차원은 인력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무역 측면만 놓고 본다면 당장 만들 제품을 봐야 하겠지만 더 원천적인 문제는 우리에게 설계 능력이 모자란 것”이라며 “인력 부분이 중요하다. 인력이 부족해 우리나라가 펩리스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인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단 조언이다. 곽 교수는 “교육부를 통해 대학 학과조정을 추진하고 수도권이나 지방거점도시에 반도체 전공학과 설치, 교수 채용 등을 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도 해야 한다”며 “정부가 국책연구원이나 예산을 통해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정부가 나서 직접 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민간이 위기감, 현장감을 더 많이 느끼기에 민간에 위탁해 시키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현재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 TSMC에 많이 뒤처지는데 이와 관련한 인력들을 확충할지, R&D를 통해 어떤 기술개발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지금 정부에서 만든다는 반도체 계약학과도 필요하지만 기초과학에 더 투자해야 한단 지적도 있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당장 사업화가 보이는 쪽에 투자하는 걸 좋아한다”며 “사업화시켜 성공 가능성을 보는걸 중요시하는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실패해도 좋으니 계속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기초과학 분야 투자를 해야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