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보험사, 중·소형사, 외국계 보험사 CEO 참석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실손보험 손해율과 보험사기 등 업계 현안 논의
은행장과 첫 간담회서 대출 금리 인하 압박, 업계 내 긴장 분위기도 감지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오는 3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주요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갖는 가운데 어떤 사안에 대해 논의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취임 이후 처음 여는 간담회인 만큼 보험사들의 재무건전성, 실손보험 손해율과 보험사기 등 산적해있는 업계 현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다만 최근 은행장과의 첫 간담회에서 과도한 이자 이익 추구를 지적하며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는 점에서 업계 내에서는 다소 긴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오는 30일 서울 모처에서 생명·손해보험사 CEO들과 회동한다. 대형 보험사를 비롯해 중·소형사, 외국계 보험사 CEO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 보험업계와의 간담회에서는 보험사들의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자본확충 방안과 백내장 수술 미지급 분쟁과 실손보험 손해율, 보험사기 대응 및 감독 방향 등 업계 각종 현안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등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가속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며 보험사들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지급여력비율(RBC)이 악화하는 등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RBC란, 모든 가입자가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줄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보험사의 대표적인 재무 건전성 지표로 꼽힌다. 보험업법은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선제적 관리 차원에서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1분기 말 기준 RBC비율은 DGB생명이 84.5%, 한화손해보험 122.8%, NH농협생명 131.5%, DB생명 139.1%, 흥국화재 146.7% 등 5개사가 권고치 이하로 떨어졌다.
금리 상승 기조가 이어지면 RBC 비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보험사들은 소비자에게 받은 보험료 중 상당액을 국채 등 안전한 채권에 투자하는데 금리가 인상되면 단기적으로 보유한 채권의 평가가치가 줄어 RBC 비율이 하락한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채권 금리가 올라갔고 반대로 채권 가격은 떨어져 보험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재무건전성 위험에 시달리는 보험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LAT) 잉여액을 RBC 비율상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보험업계도 건전성 유지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삼성화재는 일부 약관대출 한도를 기존 해지 환급금의 60%에서 50%로 낮추는 조치를 시행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장 취임 이후 보험사 CEO들과 첫 만남인만큼 전반적인 업계 현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두루두루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RBC 규제를 완화해주긴 했지만 지속적인 위험성 경고가 나오는 만큼 보험사들도 자본을 확충하는 자구적인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백내장 수술 보험금 미지급 분쟁과 실손보험 손해율, 보험사기 대응 및 감독 방향에 대한 사안도 논의될 계획이다. 최근 백내장 수술 관련 실손의료보험금 지급 관련 보험가입자와 보험사 간 다툼이 늘어나면서 보험업계는 콜센터 운영 등 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했다. 아울러 금융당국과 백내장수술 관련 보험사기 제보자에 포상금을 지급하는 특별신고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해 운영하기로 했다.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로 지급된 손·생보사의 실손보험금은 1분기 중에만 약 4570억원(잠정치)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 한 달 동안 지급 보험금은 약 2053억원으로 전체 실손보험금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17.4%에 달했다. 손해보험 10개사의 백내장 수술 관련 하루 평균 실손보험금 청구액은 지난해 40억9000만원에서 지난 3월 110억원으로 급증했다.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치료 목적 외의 백내장수술은 실손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다"며 "일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문제 안과의 상담원, 브로커에 현혹되거나 허위 광고에 넘어가 불필요하게 백내장수술을 받고 실손보험금도 받지 못하는 등 이중 피해를 겪는 경우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무조건 입원치료를 일률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보험사기 대응 및 감독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계획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보험대리점(GA)에 대한 검사를 통해 13개사의 전·현직 보험설계사 30여명이 보험사기에 연루된 사실을 적발하고 과태료와 영업 정지 등의 제재를 내렸다.
검사에서 적발된 보험설계사들은 삼성생명, 교보생명, DB손해보험 등 대형 보험사부터 세안뱅크, 프라임에셋, 케이지에이에셋 등 보험대리점까지 다양하게 소속됐다. 보험사기로 적발되는 보험설계사는 2018년 1250명에서 2019년 1600명, 2020년 1408명, 2021년 1178명 등 매년 1000명이 넘는다. 보험사기를 막아야 하는 설계사들이 오히려 주도적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9434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형 보험사기 사건에 보험설계사가 가담하는 경우가 많아 보험사기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외에 환율 변동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평가손 최소화, 자본비율 관리 대책 관련 논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이번 회동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새 원장 취임 이후 의례적인 업권 소통 행보라는 입장이지만 보험사들은 검찰 출신 원장이 어떤 주문을 할지 긴장감에 흐르고 있다. 지난 은행 간담회 때처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 경제에 도움을 달라는 구두 압박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감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직후 보이는 행보에 실제로 긴장하며 여러 부분에서 준비하고 있다"며 "최근 현안과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