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범운영할 계획이었지만 별다른 움직임 없어
기업대출에 영향 줄까 우려···가계대출 감소도 원인
"제도 도입 서둘러 은행이 미리 준비하게 해야" 지적도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올해 시범운영하기로 한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선 당국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자칫 기업대출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올해 들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여 제도에 대한 관심도가 줄었기 때문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했다. 이 원장은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급증한 가계부채가 시스템리스크로 현실화되지 않도록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안착 등을 통해 대출 증가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금융당국이 시범운영하기로 계획한 가계대출 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를 위한 별다른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업무계획에 경기대응완충자본 운영을 포함시킨 것은 맞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행 일정은 정해진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은 각 은행 별로 총 대출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규제 하한선을 높이는 제도다. 가계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은 BIS비율 규제치도 그만큼 더 많이 올라간다. 이에 은행은 당장은 자본을 더 쌓아 올라간 규제치에 대응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계대출 비중을 낮춰 규제치 상승폭을 줄이는 방향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가계대출을 직접 규제하는 수단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은행의 가계대출을 줄이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이 제도 도입을 망설이는 이유는 자칫 중소기업 대출 공급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한 후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줄이는데 집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규제 강화로 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위험도가 더 높은 기업대출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거시경제 불확실성으로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있는데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면 불에 기름을 붓는 셈이 된다. 물론 가계부문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먼저 실시한 스위스의 경우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줄었다. 하지만 국내의 금융 산업 맥락에서 당장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금융당국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가계대출 잔액이 소폭이나마 감소하고 있는 점도 제도 시행이 미뤄지는 이유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작년 말과 비교해 1000억원 줄었다. 지난 1분기엔 20년 만에 처음으로 3달 연속 감소하기도 했다. 

이에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판단하는데 기준이 되는 지표인 ‘가계신용/국내총생산(GDP) 갭’도 크게 하락했다. 이 지표의 숫자가 크면 클수록 정상 수준(장기 추세치)보다 가계대출이 더 많이 공급됐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3월 말 기준 이 지표는 1.0%포인트로 내려왔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 2020년 후 가계대출이 대규모로 풀리면서 이 지표는 한 때 역대 최고치인 5.7%포인트(2021년 3월 말)까지 치솟았으나 가계대출 감소로 크게 하락했다. 

다만 일각에선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는 것과 상관없이 제도 시행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리 제도를 운영해 은행으로 하여금 또 다시 가계대출이 급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잔액이 감소한다고 제도 실행을 미루다가 이후 가계대출이 급증할 때 다시 제도를 운영하려고 하면 부작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리스크 관리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가계대출 감소와는 별개로 제도는 도입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료=한국은행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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