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갖춘 청탁자는 부정통과자가 아니다?…조 회장 직접적 관여 여부 판단도 주목
부정채용죄 입법은 진전 없어…금융정의연대 “청탁자 수사도 안 해, 입법 속도내야”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2020년 1월22일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기욱 기자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2020년 1월22일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욱 기자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신한은행장 시절 신입행원 부정채용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최종심 결과가 이달 말 나온다. 부정채용과 부정통과자의 개념을 좁게 해석하고 조 회장의 직접적 관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항소심 무죄 판결이 유지될지 주목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오는 30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지난 2018년 9월 재판에 넘겨진 지 약 4년만에 나오는 결론이다.

조 회장과 윤승욱 전 신한은행 인사·채용담당 경영기획그룹 겸 부행장, 신한은행 인사담당자 등 7명은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총 8회에 걸쳐 반기별로 시행된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외부청탁 지원자와 신한금융지주의 부서장 이상 임직원의 자녀 명단을 만들어 별도로 관리하면서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점수를 조작하는 등 특혜를 제공한 혐의(업무방해) 등으로 기소됐다. 또 합격자들의 남녀 성비를 인위적으로 3대1로 조정하도록 한 혐의(남녀고용평등법 위반)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부모의 인맥으로 부정한 청탁을 했더라도 상위학벌과 일정한 스펙을 갖추고 있으면 부정통과자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 판결이 적법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심은 조 회장이 인사부에 직접 청탁을 받은 3명의 지원 사실과 인적 사항을 알린 행위가 위법이라고 봤다. 채용절차에서 1·2차 면접위원들에게 위임된 면접업무는 독립된 업무이고, 면접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이를 면접에 올리는 것은 평가위원들을 속이는(위계)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계에 의해 1·2차 면접위원 면접업무의 공정성이 방해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2심은 조 회장을 통해 ‘특이자’로 명단에 올랐고 불합격권이었다가 사후 보정을 통해 합격자 명단에 올랐더라도 이들의 스펙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부정통과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업의 채용 심사 단계별 재량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며 일정 범위에서 점수를 보정하는 것은 문제삼을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또 특이자의 합격과정에서 조 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연줄을 통해 부정한 청탁을 했어도 이른바 ‘스펙’만 좋으면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결이라는 시민사회 비판이 나온 대목이기도 하다.

◆ 부정채용죄 입법 미비 논란···채용청탁자 수사는 흐지부지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입법 미비’를 언급하며 책임을 국회로 돌렸던 점도 논란을 키웠다. 과거 채용비리를 업무방해로 처벌한 사례가 있어 법리 해석상 적용이 가능한데도 조 회장에게 ‘맞춤형’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었다. 대법원은 불합격권 지원자 37명을 부정하게 합격시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국회에 발의된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은 소관위원회에 1년5개월째 계류돼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채용비리를 행하거나 요구·약속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지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채용비리의 정의, 법률의 적용 범위 등의 명확하지 않다”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채용청탁자에 대한 검찰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 회장과 인사담당자들의 공소장과 판결문에 따르면 전·현직 국회의원과 기업가, 병원장 등이 채용청탁자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을 수사하거나 기소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단순 청탁일 경우 청탁자를 처벌하는 법률조항이 없고,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대가성 여부는 수사를 진행한 뒤 판단해야 하는 것인데 지레 입증의 어려움을 이유로 검찰이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은행권의 채용비리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샀는데 아직까지 입법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은 국회나 지난 정부가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공정과 상식에 기반한 정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는 채용비리에 관심을 갖고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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