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외환시장 불안 인식···경기까지 침체 조짐에 스태그플레이션 위기감
“경기 둔화에도 금리인상 불가피한 상황···실질금리, 코로나 때보다 더 완화적”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국내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면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책 당국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정책 여력이 좁아지는 모양새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선 경기부양보단 물가 안정이 더 시급하다며 금리 인상 기조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14일 정부와 한국은행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고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대외발 인플레 요인으로 국내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국내외 금융 외환시장 불안도 확대되는 양상”이라며 “복합 위기가 당분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위기감은 물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 오르며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물가상승과 함께 경기 침체 분위기도 감지된다. 올 1분기(1~3월)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6%에 그쳤다. 그동안 적극적 재정정책에 힘입어 성장을 받쳤던 민간 소비(-0.5%)가 마이너스로 전환했으며 설비, 건설투자(각-3.9%)도 부진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한국개발연구원은 6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가격의 높은 상승세가 지속됨에 따라 제조업이 둔화되며 경기 회복세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높은 물가상승세로 가계와 기업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대내외 금리가 오르면서 경기 하방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수치상으론 전월(12.9%)보다 높은 21.3%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조업일수 영향을 뺀 일평균 기준으로 보면 4월 15.3%에서 5월 10.7%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물량 기준으로도 증가세가 주춤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수입은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32.0% 증가하며 5월 무역수지는 17억100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달 1~10일까지 수출도 화물연대 파업 영향으로 전년 동기대비 12.7%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당초 2.1%에서 4.8%로 올려잡고 경제성장률은 3.0%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기저에는 물가 상황에 더해 경기가 양호하단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경제지표를 근거로 물가 부담에 소비가 위축되고 수출도 둔화하면서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섰단 진단도 나온다.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인상 카드를 쓰기 부담스러운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여유도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빅스텝 가능성과 외환시장 불안으로 추가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외화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년만에 1300원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등 외환시장에서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 상황을 봤을 때 경기침체 우려에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지속돼야 한단 진단을 내놓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초부터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보였고 지금은 거의 진행 중인데 경기와 물가를 모두 잡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 상황에서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둬야하고 기준 금리 인상도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가 안정이 안 된 상태에서 다른 경제정책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물가 안정을 정책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단 설명이다.

지금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단정하긴 어렵단 분석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진 아니더라도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반되는 상황”이라며 “지금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수 있다. 환율은 더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당장 소득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는 것이기에 경기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변수들이 연결돼 있는 복잡한 상황이란 설명이다.

하 교수는 “지금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당장 우리 환율 자체에 영향을 주는 미국 금리가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 얘기가 나오기에 국제자금 흐름 등에 충격이 없는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며 “지금 물가상승률은 5%, 기준금리는 1.75%인데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실질 금리로 보면 코로나 때보다 더 완화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 기대가 오르고 실질금리가 더 낮아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단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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