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와 유사 질환, 치료제 부재···HK이노엔이 제조해 정부에 공급
HK이노엔, 예방효과 확인 임상시험 추진···타 업체 추진은 당분간 적을 듯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국내 제약업계가 전 세계에서 확산하는 ‘원숭이 두창’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백신이나 치료제에 관심을 갖고 개발을 추진하는 업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동안 천연두 백신을 제조, 정부에 공급했던 HK이노엔이 임상시험 추진에 본격 나섰다.
2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원숭이 두창 발생 국가는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이스라엘, 스위스, 호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원숭이 두창은 세계적으로 근절이 선언된 사람 두창(천연두)와 비슷한 질환이다. 하지만 전염성과 중증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발열과 오한, 근육통이 나타나며 손을 중심으로 전신에 수두와 유사한 수포성 발진이 나타나는 증상을 보인다. 2~4주간 증상이 나타나다 자연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치명률이 10%를 넘는 변이도 있다. 하지만 최근 치명률은 3~6% 안팎으로 알려졌다. 잠복기는 통상 6~13일, 최장 21일이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천연두 백신이 원숭이 두창에 대한 교차면역 효과로 85% 가량 예방효과가 있다. 국내에는 인간 두창 백신 3502만명분이 비축돼 있다. 단, 질병청은 현재 비축물이 원숭이두창 백신과 다르기 때문에 효과성 평가 등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별도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항바이러스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제약업계 관심은 업체별로 상이한 편이다. 백신과 호흡기 제품 등을 제조하는 제약사는 상대적으로 원숭이 두창에 대한 관심이 크다. 반면 백신과 호흡기 제품을 제조하지 않는 제약사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제약업계는 코로나19 여파를 겪은 직후여서 자사 매출 등에 미칠 여파 등을 놓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여파로 침체기를 겪었기 때문에 원숭이 두창 질환보다는 그 여파에 관심이 더 있다”며 “백신을 제조하는 주변 제약사들은 전반적 상황을 체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사람 두창인 천연두백신을 제조하는 국내 제약사로는 HK이노엔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최근 HK이노엔은 기존 보유한 천연두 백신을 사용, 원숭이 두창에 대한 예방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설계를 진행 중이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지난 2009년 허가 받은 2세대 두창 백신을 그동안 국가 대테러 및 화생방 상황에 대비해 납품해왔다”며 “정부 공급 물량이기 때문에 구체적 수치나 금액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HK이노엔은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초안을 마련하면 질병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회사는 현재 제조하고 있는 2세대 두창 백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HK이노엔은 3세대 두창 백신 개발을 추진해왔다. 3세대 두창 백신은 △안전성 제고와 △노약자에도 투여 가능 △약독화한 백신 △투약 편의성 제고 등 특징을 갖고 있다. 참고로 약독화란 ‘독성을 약화한’이란 의미다. HK이노엔은 3세대 두창 백신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유효성을 확인한 상태라고 밝혔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원숭이 두창이 글로벌 문제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초안을 마련, 질병청, 식약처와 협의할 예정”이라며 “2세대 두창 백신을 기본으로 3세대 두창 백신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HK이노엔의 원숭이 두창 예방효과 임상시험에 대해 국내 제약업계 일각은 회의적 시각도 보이고 있다. 향후 원숭이 두창이 국내 유입될지 그리고 백신 개발이 성공할지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2년간 코로나 백신 개발을 추진하다 실패한 경험이 이같은 심리에 반영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녹십자 종합연구소가 지난 2008년 ‘약독화 두창 백신 개발을 위한 Research Bank 구축’이란 연구를 진행했지만 관계사인 녹십자엠에스는 원숭이 두창 백신 개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며 “코로나 백신 개발에 실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동안 천연두백신을 제조해왔던 HK이노엔이 주도적으로 나섰을 뿐 원숭이 두창이 전격 국내 유입돼 확산되기 전까지는 뚜렷하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나설 제약사가 드물 것이라는 업계 예상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 기본 역할이 신약개발이긴 하지만 주력분야도 힘든 개발이 생소한 분야에서는 더욱 힘들다”며 “당분간 추이를 보는 것도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