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참여연대 “박근혜 지시 맹목적 이행으로 국민 노후 자산 손해”
“손해액 5000억, 이재용은 3.1조 이익···수탁위 논란에 미루면 안 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 사진=연합뉴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이 손해를 입은 사실이 대법원 확정 판결로 재차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대표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4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업무상 배임죄를 유죄로 확정했다.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결의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범죄사실이다.

문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당시 복지부 안에 외부 인사로 구성된 주식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삼성합병에 반대할 우려가 있다며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안건을 다루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았다. 홍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거액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1(제일모직):0.35(삼성물산)라는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해 합병이 성사될 경우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게 됨에도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이 공단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결론 내렸다. 2015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한 국정농단의 청탁고리가 다시 인정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9년 8월 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삼성의 승계 작업 존재 및 뇌물제공의 대가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삼성물산 합병 시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액이 5000억원~675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한다. 반면 이 부회장 등 삼성 일가는 최소 3조1000억원~4조1000억원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는 공동논평을 통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 대표소송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 회사를 위해 주주가 ‘위법행위를 한 이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이사의 위법행위로 명확하게 큰 규모의 손해를 입을 회사가 손해회복과 관련한 조치를 하고 있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를 대신해 실시하게 된다.

이들은 “문형표 전 장관과 홍완선 전 본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라 국민의 노후자산에 손해를 끼친 사실이 확인됐다”며 “국민연금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불법적 합병과정에서의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은 현재 대표소송 개시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은 대표소송 개시 권한이 수탁위로 이관되면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비등하자, 지침 개정 등을 위한 별도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란 최소화에 힘쓰고 있다.

이와 관련 민변 등은 “(국민연금은) 현재 진행 중인 대표소송 개시 결정 주체에 대한 논의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표소송 제기를) 차일피일 미루어서는 안 된다”며 “책임 이사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와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의 회복 등 제대로 된 사후조치만이 또 다른 국정농단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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