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일관된 공급 정책 필요”···1주택자에 과감한 세제완화 주문도
“LTV 풀되 DSR 규제 완화는 위험”···“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새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에 집값이 다시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단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시장이 정책을 불신하는 상황이란 진단과 함께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공급 로드맵을 마련하고 공시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부동산 금융 상황을 봤을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유지하고 세제 개편은 매물이 활성화 하는 방향으로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비정상적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개발 및 재건축 규제완화, 임대차3법 폐지, 공시가격 환원, 부동산 세제 완화 등을 통해 부동산 정상화를 이뤄내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최근 규제 완화 기대 심리로 집값이 불안 조짐을 보이면서 규제 완화 공약이 실제 시행됐을 때 부작용을 살펴봐야 한단 우려도 나온다. 공약의 장단점을 따져보고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단 지적이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정책의 정상화’ 세미나에서 윤석열 정부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한 다양한 조언들이 나왔다. 이 자리에는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박사와 이한준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박사,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 등 부동산 세제, 공급, 금융, 공시가격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 전 사장은 윤 당선자 대선 캠프에 참여했고, 정 교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제주지사 재직 당시 도내 공시가격검증센터장을 맡았다. 또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국민의힘 송언석, 김상훈, 성일종, 유경준, 최형두 의원 등이 당내 경제 산업 정책 분야 전문가란 점에서 이 자리에서 나온 조언들이 새 정부 부동산 정책 수립에 반영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논의된 내용은 새 정부 부동산 정책 논의 과정에 참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따라 주택 공급이 흔들려 국민 불신 초래”
이 전 사장은 주택 공급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정권에 따라 급변하면서 공급에 대한 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한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택지 공급을 하고 택지 내 주택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최소 7년 이상이 걸린다”며 “공급 정책을 장기간 점진적 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이 재임 중 주택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단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 가능한 공급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 사장은 “앞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주택 수요도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구수는 현재보다 150만호 정도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2030년까지는 현 주택 공급 수준인 연 50만 호 수준을 유지하고 2030년 이후에는 45만호 수준이 적절하다”고 봤다.
주택 공급량의 배분이 중요하단 지적이다. 이 전 사장은 “수도권은 인구 이동 및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일정 수준의 주택 공급량은 반드시 확충이 필요하다”며 “반면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와 노령 인구 증가로 신규 주택 수요가 급감할 것이기에 신규 주택 공급보다는 노후주택의 주거 환경 정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윤석열 당선자의 주택 공급 정책 기조를 다듬었다. 주택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임기 중 250만호 공급 공약을 설계했다. 공약 실천을 위해 3기 신도시 등 기존 추진되는 공공택지 개발의 계획을 조정해야 한단 입장이다.
이 전 사장은 “수도권에 추진 중인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에 과다한 상업 업무 용지 자족시설 용지 중 일부를 주거용지로 전용해 주택 공급을 확보해야 한다”며 “용적률을 현재 200%에서 250%로 올려 주택 공급을 대규모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도시 내 주거 외 다른 용도로 뜯겨나가는 부분을 합리적으로 줄이고 용적률도 250%까지 올리면 분양가는 15~20% 낮추고 주택공급은 10만~15만호 이상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단 설명이다.
이 전 사장은 “중장기적으로는 수도권에 2기 GTX를 추진하고 지역 주변에 콤팩트 도시를 만들어 교통과 편의시설 등 기반시설이 완비된 지속가능한 주택 공급대책을 마련하고 1기 신도시 중 재건축, 리모델링을 활용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며 “비수도권 지역은 광역시를 중심으로 자치단체와 지역에서 공급 방안을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급 정책을 광역자치단체로 넘기고 중앙 정부는 광역자치단체가 하는 걸 지원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단 조언이다.
지구 해제를 통한 신도시나 택지 개발 사업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봤다. 이 전 사장은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도시나 택지 개발은 최대한 지양하고 3기 신도시는 공공택지 개발 사업의 사업 계획을 조정해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 직원이나 관료들이 중앙권력이나 지방권력 교체 일정을 이용한 구태적 업무처리 방식을 바꿔야 한단 비판이다.
◇“부동산 세제 대책, 여러 방안 동시에 시행해야”
부동산 세제 완화는 기존 매물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임 박사는 “새 정부의 세제 정상화는 세 부담을 완화시켜 가격을 안정시키고 거래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공급이 아닌 규제, 세제 강화 등 수요 억제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납세자의 현실적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면서 우회적 증여나 법인명의 부동산 거래 등 조세 목적 거래가 급증했단 지적이다.
임 박사는 “현 정부 부동산 과세 목적은 다주택자 주택 매각을 유도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주택은 잠기고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에 더해 1주택자도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납세자의 세금 부담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를 앞질러서 응능과세 원칙을 어겼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급격한 세부담 증가로 인해 거래가 위축됐단 설명이다.
윤 당선자의 부동산 세제 공약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부분과 정부 정책 의지로 추진 가능한 부분이 혼용돼 있다. 임 박사는 “공시가격이나 다주택자 중과의 일시 면제 같은 경우 대통령령으로 바로 추진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공약은 법률 개정이 반드시 필요해 국회 구조상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다만 여야 모두 1주택자에 대해선 종부세 부담 완화 공약을 했고 양도세 중과는 민주당도 보유 비용, 보유기간 등에 따라 차등 과세하는 식으로 완화하겠단 방침이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주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단 조언이다. 임 박사는 “1주택자에 대해선 장특공제 혜택을 확대하고 보유세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세를 낮춰 원할한 거래를 유도해야 한다”며 “세제 부분은 하나씩 하는 것보단 전체적으로 다 같이 동시 추진하는 게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또 “부동산 세제는 공급 대책이 아니다.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을 유도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고 이게 주거생활의 안정으로 가는 발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실패,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패를 교훈삼아 규제 강화가 아닌 수급 안정에 바탕을 둔 일관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야 한단 조언이다.
임 박사는 “취득세 세율 인하, 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 종부세 2018년 이전 세율 환원, 공정시장 가액 비율 하향을 통한 공시가격 인상 부담 완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며 “재산세와 종부세는 재원 배분 방식 때문에 함께 개선하기는 쉽지 않은 방법이다. 장기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LTV 완화 필요, DSR는 미세조정 수준 가야”
차기 정부가 대출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는 가운데 부동산 금융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국내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가 급증세를 지속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며 “그동안 가계부채나 자영업자 부채 문제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주택이 아닌 상업용 부동산 및 해외 대체 투자와 관련이 깊은 기업 여신 및 금융투자 상품의 증가율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가 가계부채 증가세보다 빠르게 확장돼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익스포저가 2021년 9월 말 현재 63%까지 증가했다”며 “은행권에 비해 비은행권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높은 주담대 등 부채의 질이 안 좋은 대출이 비은행권에 쏠려있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국가들이 부채가 급증해 자산가격 버블이 형성된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 긴축이 본격화되면 신흥국뿐 아니라 일부 선진국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단 진단이다.
신 박사는 “경우에 따라 그 충격이 국내로 전이되는 것도 우려해야 한다”며 “자영업자와 가계부채에 더해 부동산 등 일부 자산시장이 어려움을 맞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국내 금융시장 측면에선 대외 충격에 취약한 금융투자권을 비롯한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상호 연관 거래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며 “특정 금융권의 충격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연계 거래를 통해 다른 금융권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많다. 이미 국내에 이런 고리들이 거미줄처럼 형성돼 있다”고 했다.
국내 자산시장도 글로벌 통화정책 정상화에 맞물려 자산 가격 상승폭이 크게 제한되거나 조정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 시장마다 외부 충격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기에 잘 살펴봐야 한단 조언이다.
신 박사는 “국내 금리 인상 기조가 강화되고 중장기적으로 주택 공급도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미 가격 상승폭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향후 가격 상승폭이 상당 부분 제한되거나 깊은 조정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부동산 세제 완화와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 얘기되고 있는데 대출 규제까지 한 번에 풀리면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단 우려다.
신 박사는 “LTV 규제는 시장관리로 보면 비정상적이기에 정상화하는 방향이 맞지만 DSR 규제는 가계부채 관리 및 차주의 건전성 보호 차원에서 현재 수준에서 미세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다만 저소득 실수요자의 금융 적극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생애 최초 신혼부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모기지,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등은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부동산실거래가 전면 공개, 조정 제도 정비해야”
주택 종류에 따라 제각각인 공시가격 신고 절차를 일원화해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공시가격 신고의 경우 아파트와 표준주택은 국토부 장관과 한국부동산원 직원, 개별주택은 지자체장과 지자체 공무원이 각각 관리한다.
정 교수는 “미국은 주정부에서는 지자체가 하는 것을 모니터링만 하고 지자체 과세국이 가격을 매긴다. 지역 납세자에게 가까이 있고 서비스도 좋다”며 “과세국장이 지역 방송이나 지역 신문에 과세 관련 이의신청 기간을 알리는 등 지자체 과세국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고 말했다. 납세자에게 설명할수 있도록 과세국 인원 절반 이상은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단 설명이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가 납세자 중심 공시가격 제도를 만들려면 전문성을 구축해야 되고 통계가 잘 정리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동산 통계는 참담한 지경”이라며 “국토교통부 공공 포털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아 보면 말도 안되는 데이터들이 들어간 경우가 있다. 건물의 높이가 한 15m인데 5m로 들어가는 등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공시가격 검증제도도 정비가 필요하단 지적이다. 원래 표준주택이나 개별주택은 공시가격 검증주택이 있었지만 공동주택 공시가격엔 검증 제도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공동주택도 공시가격 검증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정 교수는 “공동주택 검증단이 전국 공동주택 1440만호를 5일 만에 검증했다고 하는데 말이 좀 안된다. 납세자를 위해 전국 지자체에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은 현 정부에서 부동산 시장 경제 주체에 공포감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단 지적이다.
정 교수는 “새 정부의 키워드인 공정과 상식은 현 정부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정부의 공정은 선언될 뿐 입증되지 않았으며 투명하게 공개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신뢰받지 못했다”며 “그런데 새 정부가 똑같은 키워드를 골랐으니 어떻게 현정부와 다르냔 질문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를 설명할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가 공시가격을 전면적으로 모두 오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3월에 공개되는데 이게 공간 정보 포털에 올라오는 시기는 10월쯤이다. 이 땐 이미 이의 신청기간이 다 끝나 납세자는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다. 납세자를 보호하려면 의견 제출기간에 정보를 받아야 한단 지적이다.
정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버려야 한다. 시장을 불안케하고 많은 불신과 오류를 계속 재생산하게 된다”며 “현실화 100%는 그냥 시세다. 그냥 공시가격 100% 공개하고 공정시장 가액 비율을 조절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세금을 많이 거둘지 낮출지는 매해 국회에서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조절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단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