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ETF·ETN 최근 한 달 동안 급락···지정학적 리스크 원인 지목
‘경기 둔화로 배출권 가격 상방 제한’···‘탄소 규제 정책 필연적 멀리봐야’ 지적도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고공행진을 하던 탄소배출권 투자 상품이 최근 들어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에 탄소 중립 정책이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하면서 투자 심리가 약화된 영향이다. 정책 이슈와 경기 둔화 가능성에 가격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전망과 친환경이 시대적 흐름이 된 만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나온다.
◇ 상승세 보이던 탄소배출권 상품, 최근 한 달 동안 급락
25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의 ‘SOL 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 ETF(상장지수증권)는 지난 24일 기준 최근 한 달 동안 마이너스(-) 18.6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ETF 전종목 중에서 네 번째로 낮은 수익률이다. 러시아와 원유 인버스 ETF만이 이 ETF 보다 수익률이 낮았다.
다른 탄소배출권 ETF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도 -18.41% 수익률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신한자산운용의 ‘SOL 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HS(합성)’과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글로벌 탄소배출권선물’도 각각 -14.78%, -13.85%로 부진했다.
탄소배출권에 투자하는 ETN(상장지수증권)도 한 달 동안 저조한 성과를 냈다.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 S&P 유럽탄소배출권 선물 ETN’은 한 달 동안 -20.17%의 수익률을 냈다. 메리츠증권의 ‘메리츠 S&P 유럽탄소배출권 선물 ETN’과 ‘메리츠 S&P 유럽탄소배출권 선물 ETN(H)’, 한국투자증권의 ‘TRUE S&P 유럽탄소배출권 선물 ETN(H)’도 각각 -20.06%, -19.18%, -19.17%로 저조했다.
탄소배출권 투자는 지난달 만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탄소 감축이 글로벌 산업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데다 공급 차질에 따른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탄소배출권의 가치를 높인 영향이었다. 통상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석탄 구매가 늘게 되고 탄소 배출 증가에 따라 탄소배출권의 수요도 높아진다.
실제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럽 탄소배출권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간)만 하더라도 1이산화탄소 환산 톤(t)당 94.25유로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10월 55유로 수준에서 70% 넘게 오른 가격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24일부터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이달 7일에는 58유로까지 내리기도 했다.
◇ 경기 침체 우려와 친환경 트렌드 지속 기대 혼재···향후 움직임 주목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의 하락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이슈 영향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DB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럽 내 지정학적 이슈가 GDP(국내총생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탄소배출권 수요가 줄 수 있는 데다 러시아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한 반발로 강도 높은 기후 정책(탄소 규제)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탄소배출권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일각에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까지의 전쟁 상황만으로도 올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이 1.4%포인트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여기에 전쟁에 따른 부품 수급 중단,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에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도 탄소배출권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익실현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탄소배출권 가격에 부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해 고점 대비 하락하기는 했지만 시계열을 늘려서 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인 까닭이다. 유럽 탄소배출권의 경우 2년 전만 하더라도 톤당 20유로에서 거래됐었다. 탄소배출권 가격 전망이 부정적일 경우 지난달과 같은 매도세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번 조정 국면이 투자 기회라는 전망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친환경과 탄소제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정책적 불확실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탄소배출권의 수요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급락을 일으킨 이슈 보다 장기적인 관점인 탄소 규제 강화 추세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