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수요 늘었지만 물류대란에 공급 어려워

반도체 클린룸 생산 현장. /사진=삼성전자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물류 대란과 부품 수급난 영향으로 반도체 장비 리드타임(주문 후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규모가 큰 장비사와 영세한 업체 사이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2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장비 반입 시점은 점점 장기화되는 추세다. 최근 장비 발주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3배가량 길어졌다. 이같은 현상은 특정 업체에 국한된 게 아니라 장비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2차전지 설비 등으로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 대란과 부품 공급난이 장비 리드타임 장기화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으로 향하는 전 노선의 항만 적체에 따른 물류난이 심화되면서 장비 공급이 늦어진 것이다. 또 자동화 설비에는 대량의 반도체가 필요한데, 부품 공급 부족이 빚어지면서 장비 생산도 지연되는 상황이다.

장비 수요가 급증한 점도 설비 반입 시점을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 장비 주문이 몰리면서 리드타임이 더욱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투자액은 전년보다 14% 증가해 역대 최대 수준인 1030억 달러(약 124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주문을 받아서 협력업체들에 발주를 내고 장비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문제가 나타났는데, 이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보편화됐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발주 타이밍이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클린룸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클린룸 생산 현장. /사진=SK하이닉스

장비사 관계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라면 감기 정도로 지나갈 문제가 작은 회사들에겐 큰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당연히 규모가 큰 회사가 더 유리하다”며 “실제로 주식시장에 상장된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대처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작은 업체들은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장비사 관계자도 “재고 축적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고 해서 장비업계에 유리한 여건은 아니다”라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납기를 맞춰줄 수 있는 능력이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한 장납기 자재는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거나 미리 발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작은 업체들은 이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공급망 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면서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비 리드타임 증가는 칩 제조사들의 공장 가동 차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회사들은 라인 가동 계획을 세우고 난 뒤에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서 장비 발주를 하는데, 그 일정이 지연되면 양산에 차질이 생긴다”며 “장비 안정화를 위한 샘플 테스트, 성능 테스트, 품질 테스트 등의 일정은 정해져 있는데 늦춰지면 공정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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