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상인들, 구시장 주차장 등 불법점유···수협 용역비 지출은 손해”
“불법점유 아냐” 항소심 판단 뒤집고 파기환송···상인 측 “수긍 못해”

지난 2018년 11월9일 물과 전기가 끊긴 구노량진수산시장 입구에 신시장으로 소비자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11월9일 물과 전기가 끊긴 구노량진수산시장 입구에 신시장으로 소비자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에 반대하며 구시장 시설물을 점유한 일부 상인들을 상대로 제기한 3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수협 측 손을 들어줬다.

상인들이 구시장 건물 등을 불법점유 했다고 볼 수 없고, 수협이 지출한 관리용역비가 상인들의 불법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라고 볼 수 없다고 본 원심을 파기한 사례다.

대법원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수협이 ‘노량진수산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비대위) 지도부 등 관계자 1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고 수협의 손해배상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점유와 손해, 손해의 범위와 손해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 현대화 시장 준공 후 구시장 상인 300여명 이전 반대···주차장·점포 점유 논란 

이번 사건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시장이 준공된지 몇 개월이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2005년 노후화된 구시장 건물 옆에 현대화된 시장 건물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해 2015년 10월 준공한 바 있다.

수협 측은 2016년 3월 구시장 상인들에게 입주일(3월15일)까지 현대화 시장 건물로 이전을 마치고 구시장 점포 등 시설물을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 또 구시장 주차장입구에 사용중단 공고문을 붙이고 진입차단 시설물을 설치했다.

그러자 구시장 상인 중 300여명은 현대화 시장 이전에 반대하며 비대위를 구성한 뒤 수협 측이 붙인 주차장 운영중단 공고문을 떼고 차단시설물 제거했다. 또 구시장 점포 점유 등을 계속했다.

수협 측은 상인들이 주차장을 무단으로 점유해 그 차임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고, 구시장 점포 반환 거부 등으로 관리용역 계약에 따른 용역비가 지출됐다며 이를 배상하라고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수협 측이 일부 승소했지만, 항소심(이 사건 원심)은 이를 뒤집었다. 원심은 비대위 측이 주차장을 무단으로 점유했다고 볼 수 없고, 수협이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원심은 ▲주차장이 애당초 철거될 예정이었던 점 ▲피고들이 독자적으로 주차장 입구와 안내소를 설치한 것은 구시장을 찾아온 고객에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주차장을 전면적으로 지배해 사용 통제한 것은 아닌 점 ▲주차증을 발급한 것은 상인과 고객의 차량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피고들은 권한 없이 주차장 운영 중단에 관한 공고문을 떼고 진입 차단용 시설물을 파손했다”며 “이는 원고의 이 사건 주차장에 대한 ‘사실적 지배’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들은 주차장 입구와 2층에 독자적으로 안내소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한다는 현수막과 전단지를 게시·배포했다. 진출입 차량을 안내했다”며 “주차장을 이용하는 차량을 상대로 비대위 명의 주차증을 발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구시장의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 주차장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면서 사용·수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소유자인 원고 수협이 주차장을 종국적으로 철거할 의사나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의 주차장에 대한 점유를 정당화하거나 그로 인한 손해를 부정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구시장 상인들의 점포 반환거부, 공실 무단점유, 기물 파손, 무단 물품 적재 등으로 원고 측이 관리용역 계약에 따른 용역비를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이를 배상할 의무도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고들이 구시장 점포의 반환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조직적으로 구시장 내 다른 공실을 추가로 점유·사용하거나 구시장 내 시설을 훼손․변경하고 이를 막으려는 직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등 원고 측의 정당한 관리·보존 업무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방해 행위가 계속되는 경우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원고 측이 지출한 비용은 피고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통상 손해로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은 피고들이 원고 측의 정당한 관리·보존업무를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방해했는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당하게 지출한 관리·보존비용의 범위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추가적으로 심리하고 구체적인 손해배상액을 산정했어야 한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원고 측이 지출한 용역비는 피고들의 행위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민주노련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원들이 '수협중앙회의 폭압적인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사업과 상인 손해배상소송 강제 경매규탄 및 사법거래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1.1
지난 2018년 11월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민주노련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원들이 '수협중앙회의 폭압적인 노량진수산시장현대화사업과 상인 손해배상소송 강제 경매규탄 및 사법거래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비대위 측 “대법 판단은 부당···수협 영업방해에 대응한 것”

비대위 측은 이번 대법원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협 측이 구시장 시장들의 영업을 방해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과정속에서 발생한 일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비대위 핵심 관계자는 시사저널e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대법원은 ‘사실적 지배’라는 논리로 비대위가 불법점유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이 논리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면서 “주차장은 영업에 필수적인 시설이고,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명백한 영업방해로 비대위는 영업방해에 대응했던 것일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비대위와 상인들은 주차장 이용으로 실질적인 이익을 취한 사실도 없다”라며 “사건당시에 수협 측이 제기한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수협 측의 용역비 청구 부분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수협 측은 일부 상인이 현대화 시장 입주를 거부하면서 구시장 점포를 계속 점유하는 상황을 관리·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이다”라며 “통상 손해(민법상 당연히 예상되는 손해)를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법률검토를 통해 파기환송심에서 재차 다투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수협과 비대위 측은 원만하게 합의하는 논의도 물밑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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