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각공정 활용 크립톤 가스, 양국 수입 비중 절반

반도체 클린룸 생산 현장.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생산 현장. /사진=삼성전자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업계가 원재료 수입 이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양국에서 생산되는 희귀가스를 반도체 공정 과정에 활용하는데, 전쟁이 발발할 경우 원재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반도체 생산에 단기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군사적 충돌 불확실성이 걷히기 전까지 리스크가 지속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특정 국가에 대한 원재료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네온 중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비중은 각각 23%와 5.3%로 나타났다. 양국 합계는 28.3%로 중국(66.6%)에 이어 두 번째로 의존도가 높다. 네온은 반도체 노광공정에 사용되는 희귀가스다.

포스코가 지난달 반도체용 특수가스 전문기업인 TEMC와 협력해 연간 약 22000N(노멀 입방미터)의 고순도 네온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했지만, 이는 국내 수요의 16% 정도만 충족하는 수치다. 또 올해 설비 준공 이후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어서 국내 반도체업계는 아직 네온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반도체 식각공정에 활용되는 크립톤 가스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기준 크립톤 수입 비중은 우크라이나 30.7%, 러시아 17.5%로 총 48.2%가 양국에서 들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된 크립톤 물량이 가장 많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희귀가스 공급량이 줄어들게 되면 가격 상승에 영향은 받을 것”이라면서도 “과반 이상을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대체 공급처가 있을 것이다. 계속 주시해야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까지 원재료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전날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반도체 기업 간담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크라이나발 원재료 수급 이슈에 대해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재고를 많이 확보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잘 하고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장기화되거나 미국이 러시아에 자국 반도체 기술을 이용한 제품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릴 가능성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단 분석이다.

정 위원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는 천연가스나 석유 부산물을 많이 만들어내는 국가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계속 주시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이 러시아 시장에 수출을 못하게 하는 제재를 한다면 정부로서는 미국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다. 러시아와 직간접적인 외교 관계를 활용해서 러시아에서 한국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기업은 소재를 대체하기 위한 다변화 노력을 하고, 정부는 기업에 일시적인 관세 혜택을 주거나 다른 나라에서 물자를 들여오기 위한 외교적인 협조를 구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어 상시적인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 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60%가 넘는 품목군을 뽑아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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