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안진이 전문가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워"
FI측, 가치 재산정에 공격적 행보 전망···"2차 중재 신청낸다"
'분쟁 승기 카드' IPO도 미뤄진 교보생명···"검찰 항소 기대"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교보생명의 가치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계평가업무 기준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과 재무적투자자(FI) 관계자들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기업공개(IPO)가 연기된데 이어 1심도 패소하면서 향후 FI들과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가치를 다시 산정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는 10일 공인회계사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명과 어피너티컨소시엄 관계자 2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진의 공인회계사들은 FI 측이 제시한 가치평가 방법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풋옵션 가격을 산정했고 최종 결정된 40만9912원도 어피니티 측이 요구한 방식대로 산출된 가격 보다 낮았다”며 “이에 안진의 공인회계사들이 가치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적 판단을 하지 않고 FI측 관계자에 의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판 때 핵심 쟁점이었던 어피니티와 안진 간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에 대해서는 공인회계사회의 평가를 근거로 들었다. 앞서 공인회계사회 측은 안진과 어피너티 측의 의사소통 절차는 공모행위가 아니라 통상적인 업무행위에 해당하며 안진회계법인은 독립적인 지위에서 업무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교보생명은 FI와 분쟁에서 더 불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죄가 선고됐다면 교보생명은 풋옵션 가치 평가에서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풋옵션 가격을 다시 산정하는데 있어서 FI들이 가치평가를 의뢰할 공인회계사를 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 회계사들이 실형을 받은 마당에 평가를 더 보수적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국제상공회의소(ICC)는 교보생명과 FI 풋옵션 분쟁에 대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FI가 풋옵션 가격으로 제시한 40만9000원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봤지만 풋옵션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결내렸다. 이에 교보생명과 FI는 풋옵션 가격을 다시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판결로 FI는 풋옵션 가격을 높게 책정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FI는 신 회장을 상대로 2차 중재 신청을 예고한 바 있다.
FI 측 관계자는 “2차 중재는 이달 중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번 판결로 2차 중재에선 신 회장이 처음부터 풋옵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FI들을 공격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교보생명의 IPO가 연기되면서 이번 1심 판결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IPO는 교보생명이 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거래소는 교보생명이 신청한 상장 예비심사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심사를 연장했다. 주요주주인 신 회장과 FI가 갈등하고 있기에 추가 심사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요주주 간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IPO 허가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중론이다.
IPO에 성공하면 교보생명은 FI가 풋옵션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현재 상장된 대형 생보사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배 수준이다. 이를 고려하면 교보생명의 공모가는 주당 15만원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FI가 제시한 가격인 40만원 수준과는 크게 차이난다. 하지만 FI와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한 IPO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앞서 검찰이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 1년에서 1년 6개월과 추징금을 구형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검찰은 이번 혐의에 대해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 전체의 기초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 만큼 항소를 결정해 항소심에서 적절한 판단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니티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은 2012년 FI로서 교보생명 지분을 1조2000억원에 사들였다. FI는 투자의 조건으로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IPO에 실패할 경우 신 회장에게 주식을 공정시장가치(FMV)에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확보했다. 이후 신 회장은 IPO를 추진했지만 약속된 기한을 넘겼다. 이에 어피너티는 지난 2018년 10월 주당 40만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신 회장이 이 가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양 측은 분쟁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