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시 미러 모두 비용 대비 실익 적어···사태 장기화시 우리 경제도 영향”
“신북방 정책·FTA 등 한러관계 주목 필요···돈벌이 최우선 통상 정책 바꿔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인다. 당장 전쟁이 터질 가능성은 낮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에너지 산업 타격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경제적 관점에 치우친 외교통상 정책을 벗어나 다양한 면을 고려해 방향을 잡아야 한단 조언도 제기된다. 

9일 외신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군병력을 집결시키면서 양국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와 해군 상륙함을 보내 무력시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또 10일부터는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과 접한 벨라루스와 합동 군사 훈련에 돌입한다.

미국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전체 병력 70%이상을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으로 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무력으로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전례가 있다. 다만, 최근 물밑 협상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 김은실 디자이너
/ 김은실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실제 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전쟁을 했을 때 들어갈 비용에 비해 실익이 적단 것이다.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은 “지금 러시아는 원하는 이해관계를 확보했는데 전쟁을 일으키면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배제되거나 여러 제재를 받을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추가 제제가 있을 수 있고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를 보내는 수송관인 노스스트림2가 승인 거부되면 러시아의 유럽 에너지 전략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민 여론도 전쟁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단 설명이다. 갈등의 한 축인 미국도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쟁이 터지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더십이 큰 타격을 받아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끝까지 막으려 할 텐데 러시아도 이를 알기에 자꾸 일을 키우는 것이다. 마지막엔 러시아가 최대한 얻을 걸 얻고 타협해 상황이 마무리되는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 지금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데 러시아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건 부담스런 상황이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실제 전쟁에 돌입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 세계 간 긴장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이 경우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알루미늄 생산량이 세계 2위이다. 또 팔라듐, 백금, 구리, 니켈 등도 세계적 생산량을 자랑한다. 밀 생산량도 세계 5위 수준이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 연구위원은 “미국은 지금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무역적자가 크게 늘었다”며 “지금은 큰 영향이 없으나 만약 상황이 악화되면 무역 적자나 에너지 가격 급등, 인플레이션 등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당장 우리나라 경제에 직접적 타격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만약 전쟁이 터지거나 긴장이 장기화되면 식량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세계적 식량 대국이기에 공급망 문제가 생기면 식량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시 신북방 정책과 한러자유무역협정(FTA)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단 전망이다. 안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신북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에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가시화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러FTA도 러시아 입장에선 실익도 없고 한국산 수입만 늘기에 할 이유가 별로 없다”며 “이번 사태가 악화하면 우리 입장에선 미국쪽으로 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신북방 정책 등 러시아 관련 정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에 우리에게 좋을 건 없다”고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공급망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켰듯 러시아에 대해서도 에너지쪽에서 공급망 전선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 위원은 “유럽은 석유나 천연가스 등에 대한 러시아 의존도가 너무 높다. 서방 국가들이 이 의존도를 줄여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지금 노스스트림2가 개통 승인을 앞두는 등 앞으로 의존도는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유럽이 그동안 미국과 중동 등 수입 대체선 발굴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됐던 점을 봤을 때 에너지 쪽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갈등 상황에서 천연가스를 제재하긴 어렵다. 유럽과 미국 입장도 다른 부분이 있다”며 “천연가스 갈등이 지속된다면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기에 우리 입장에선 산업 생산성이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수출 경쟁력에 있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국제관계를 금전적 부분만 따지는 수준을 벗어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단 조언이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는 통상국가다 보니 수출 등 경제적 피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데 일본은 다소 다르다”고 말했다. 과거 센카쿠열도 사태 이후 중국 내 반일감정이 커지면서 일본 기업들이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수출 등을 이유로 국가의 국제관계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주목해 국제 체제를 만들거나 민주주의 가치 등에 대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단 설명이다. 

안 교수는 “우리는 아직도 수출 실적, 무역 흑자 등 금전적 마인드로 방향을 논의하다보니 통상 환경이 위험해진 면이 있다”며 “정부가 방향성 없이 그때그때 영업 실적 따지듯 외교, 통상정책을 펼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돈 되면 다 좋단 식의 방향은 장기적으론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더 높이기 때문에 산업계가 방향을 잡기 더 어렵게 된단 지적이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와 러시아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자칫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션이 될 수 있기에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선 최대한 중립적 위치에서 지켜보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길어진다면 미국과 EU, 일본 연대가 더 강해지고 우리로선 중립 입장을 취할 공간이 줄어들 것이다. 입장을 잡아야 하는데 두 후보 간 입장이 확연하게 다르다보니 선거 결과가 가장 큰 변수”라며 “대선 직후 신정부는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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