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 신축 현장서 2명 추락사
건설사 중 중대재해법 첫 수사대상
“적용 대상 모호···총수에 칼끝 향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요진건설산업이 신축 현장 사망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1호 건설사’가 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최은상 요진건설산업 부회장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처벌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최 회장이 지난해 이미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처벌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 기준이 광범위해 실제 소유주인 오너 일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요진건설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앞서 지난 8일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경기 성남시 판교 ‘판교제2테크노밸리’ 업무·연구시설 신축 현장에서 승강기가 지상 12층에서 지하 5층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강기 안에서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숨졌다. 사고가 난 건물은 요진건설산업이 2020년 5월부터 지하 5층~지상12층, 연면적 20만㎡ 규모로 건설 중이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CEO)에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됐다.
요진건설산업은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중대재해법 적용 처벌 1호 건설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직원 200명 이상의 중견기업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기준인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에 해당된다. 이번에 숨진 근로자 2명은 엘리베이터 설치 하청업체 근로자이지만 중대재해법은 하청의 사고도 원청에 책임을 묻고 있어 요진건설산업의 안전보건조치 준수 여부가 처벌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에 대한 처벌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요진건설사업은 오랜 기간 2세 경영체제를 유지해 왔다. 창업주인 최준명 회장은 2004년 차남인 최은상 부회장에 경영권을 물려줬다. 최 부회장은 2019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2세 경영인 입지를 공고히 했다. 부친인 최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요진건설산업 지분 33.52%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난해 요진건설산업 창립 45주년 기념식에서 ‘100년 기업’ 도약 의지를 밝히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사고로 오너 일가의 법적 책임을 묻기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 부회장이 지난해 8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다. 이후 전문경영인 송선호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당시 요진건설산업은 신성장동력 필요성 등을 고려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최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것을 두고 처벌 면피용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요진건설산업은 올해 초 정찬욱 건설사업본부장을 최고안전책임자(CSO)로 겸하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요진건설산업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한림건설, 아이에스동서, 한신공영 등 다른 중견 건설업체도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며 “이어 CSO직을 신설하는 건설사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너 일가에 몰리는 충격도 상쇄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흐름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오너 일가가 이번 사고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사고 발생시 원칙적으로 건설사 수장에 일차적인 책임을 지우고 있지만 경영책임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처벌 대상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CSO가 있더라도 CEO 면책을 담당하기 어려우며 기업의 실제 소유주 처벌까지도 열려 있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처벌 대상으로 ‘경영 책임자’의 정의가 모호한 만큼 전문경영인뿐 아니라 총수에게도 칼끝이 향할 수 있다”며 “기업으로선 재해에 따른 ‘오너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재해가 잦은 건설현장의 첫 번째 중대재해법 적용 케이스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본보기로 처벌 기준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요진건설산업은 1976년 설립돼 ‘요진와인시티’(Y-CITY)라는 주거브랜드로 알려진 종합건설회사다. 토목 건설을 주축으로 아파트 건설업, 부동산 개발 등에 진출해 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74위다. 주택∙건설업 이외에도 요진건설 여자골프단, 학교법인 휘경학원(여중∙고)을 보유하고 있다. 매출액은 지난 2020년 연결 기준 257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