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 전 금융권에 추가 충당금 적립 요구···수용시 배당 축소 불가피
4대 시중은행 중 3개 은행 충당금 감소세···건전성 지표는 안정적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지난해 초 민간사 경영개입 논란을 일으켰던 금융당국의 배당 제한 조치가 올해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시 코로나19 지원 대출 등으로 확대된 부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권에 배당 축소를 주문했던 금융당국이 올해에도 또 다시 대손충당금 적립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전반적인 건전성 수치가 전년보다 더욱 개선됐기 때문에 충당금 추가 적립이 크게 급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은보 금감원장 “금융사, 충당금 더 쌓아야”···배당 앞둔 은행권 ‘난색’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연일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을 통한 위기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7개 카드사 및 12개 캐피털사의 리스크담당 임원들과 화상회의를 열고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지난 24일에는 금융감독원이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새마을금고, 신협중앙회 등 상호금융권 여신담당 임원들에게 추가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것으로 당부했다.
은행권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최근 각 은행들로부터 대손충당금 적립 수준을 파악한 뒤 보완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은보 금감원장 역시 지난 26일 ‘금융 플랫폼 간담회’를 마치고 취재진들과 만나 “최근 전체적 세계 경제 또는 국내 거시경제 여건들이 상당히 불투명해지고 있다”며 “시장 리스크를 반영해서 충당금을 쌓는 것으로 계산하면 작년보다도 충당금 규모가 좀 줄어드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금융사들에 충당금을 더 쌓도록 해서 여러 위험들이 현실화했을 때 우리 금융기관들이 그걸 흡수하는 능력들을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잇따른 충당금 추가 적립 요구에 2021년도 결산배당을 앞둔 은행권은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충당금을 늘리게 되면 그만큼 배당이 줄어들게 되고 주주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배당제한 조치에 따라 불가피하게 배당을 줄이면서 주주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중)을 20%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고 각 금융지주들은 대부분 이를 받아들였다. 대표적으로 KB금융지주의 경우 배당총액이 2020년 8610억원에서 지난해 6897억원으로 줄어들었으며 신한금융지주도 배당총액이 8839억원에서 8038억원으로 감소했다.
특히 올해 국내 금융그룹들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등에 힘입어 호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고배당에 대한 주주들의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 각각 3조7722억원, 3조559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4조원대 연 순익을 거둘 수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하나금융지주도 3분기 2조6815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3조클럽’ 가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3분기 누적 순익은 2조198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1400억원) 대비 92.8%나 증가했다.
심지어 금리인상 효과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도 최근 전반적인 코스피 부진의 영향으로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주주달래기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일까지만해도 6만1900원 수준이었던 KB금융의 주가는 27일 5만8000원으로 6.3% 감소했으며 신한금융 역시 같은 기간 3만8800원에서 3만8100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하나금융도 주가가 4만6950원에서 4만4100원으로 6.07% 떨어졌고 우리금융의 주가도 1만5050원에서 1만4300원으로 4.98% 하락했다.
◇4대은행 충당금 적립률 일제히 상승···고정이하여신비율 등도 개선
현재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충당금 적립 주문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표하고 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2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은행권에서는 당국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현재 시장을 보수적으로 보고 대손충당금을 적극적으로 쌓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미국에 비해 국내 은행의 충당금 규모가 적다’는 지적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대손충당금에 더해 대손준비금까지 쌓고 있어서 이를 다 합치면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권의 대손충당금은 2020년에 비해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각종 건전성 지표 등은 오히려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3분기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중에서 전년 대비 충당금이 증가한 곳은 국민은행이 유일했으며 나머지 3곳의 은행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은 2020년 3분기 1조3943억원에서 1조4352억원으로 충당금이 2.93% 증가했으나 신한은행은 1조4223억원에서 1조3438억원으로 5.52% 줄어들었으며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각각 3.02%, 11.48%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대손충당금을 고정이하여신총액으로 나눈 비율로 실질적으로 부실 위험이 있는 여신에 대해 얼마나 충당금이 쌓여있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민은행의 충당금 적립률은 182.27%로 전년 동기(140.39%) 대비 41.88%포인트 상승했으며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132.02%에서 138.85%로 6.83% 개선됐다. 하나은행도 124.79%에서 142.48%로 17.69% 상승했으며 우리은행도 151.1%에서 193.37%로 42.27% 높아졌다.
건전성 지표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4대 시중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0.3%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모든 은행이 2020년에 비해 낮아졌다. 연체율 역시 0.1~0.2%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 역시 2020년에 비해 더욱 낮아진 수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의 대손충당금이 전년도에 비해 줄어든 것은 그만큼 고정이하여신 등의 부실 위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며 “현재로서는 우려할만큼 건전성 수치가 악화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 지원대출 만기연장, 이자상황 유예 등으로 인해 나타나지 않은 부실 위험 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정부 차원에서 연착륙 방안을 고심해야하는 것이지 무작정 은행에서 대비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지원 조치를 종료해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금융당국”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