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면세점 매출 비중 90%, 중국 대리구매상에서 나와
높은 중국 대리구매상 의존도에 루이비통 국내 시내면세점 철수하기로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국내 면세점들의 중국 대리구매상(代工·보따리상)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 철수를 공식화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자 사실상 중국 대리구매상들이 면세점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롤렉스 규모 축소에 이어 루이비통까지 철수를 결정하자 명품 브랜드 도미노 철수 우려가 나오고 있다.

27일 영국의 면세유통전문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롯데면세점 제주점 매장 운영을 중단한 데 이어 오는 3월 신라면세점 제주점, 롯데면세점 부산점과 잠실 월드타워점에 있는 매장을 추가로 닫기로 했다. 보도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본점에 있는 나머지 시내면세점 매장도 올해 10월과 내년 3월 사이에 모두 철수할 계획이다.

텅 빈 시내면세점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텅 빈 시내면세점 모습. / 사진=한다원 기자

루이비통의 철수는 중국 대리구매상들의 영향이 컸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시내면세점은 현재 중국 대리구매상 매출 비중이 90%에 달한다. 중국 대리구매상들은 카카오톡 개념인 위챗을 통해 물건을 주문받은 후 면세품을 대량으로 사들여 중국 또는 홍콩에 되팔아 30%정도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

과거 중국 대리구매상들은 개인형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규모를 넓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업형 대리구매상들은 한국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사업체를 통해 면세품을 구매한 후 중국, 홍콩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일부는 중국 오픈마켓에서 중국 현지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한다.

이날 시내면세점에서 만난 중국 대리구매상은 “예전에는 면세품을 구매한 후 출국을 하지 않다보니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요새는 사업체를 통해 면세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시내면세점에는 대리구매상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에 인기 제품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더 이상은 대답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또 다른 대리구매상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설화수, 후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만큼 구매하고 바로 중국 라이브커머스를 켜 소비자들에게 인증하고 있다”며 “워낙 가짜 제품도 많다보니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게 롯데, 신라면세점에서 구매했다는 것을 인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대리구매상들이 시내면세점에서 대량구매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중국 대리구매상들이 시내면세점에서 대량구매하고 있다. / 사진=한다원 기자
중국 이커머스 타오바오에 판매되는 국내 면세품들. / 사진=타오바오 캡처
중국 이커머스 타오바오에 판매되는 국내 면세품들. / 사진=타오바오 캡처

실제 중국 이커머스 타오바오, 핀둬둬 등에서는 ‘한국 화장품 대리구매’, ‘한국 면세품’ 등 글과 함께 설화수, 후 등 국내 화장품과 의류, 해외 럭셔리 화장품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해당 판매글에는 “대리구매상들이 판매하는 제품들은 한국에서 온게 확실하냐”, “한국 면세품 맞냐”, “가품 아니냐” 등의 질문도 함께 적혀 있었다.

문제는 중국 대리구매상들의 판매 과정이다. 이들은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대량 제품을 구입한 후 중국, 홍콩에 수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형 대리구매상들이 진품과 가품을 섞어 판매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 철수를 결정한 이유기도 하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루이비통의 철수로 해외 명품 브랜드의 도미노 철수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에는 루이비통과 디올, 셀린느, 펜디, 지방시 등이 속해있다. 업계에서는 이 중 디올이 루이비통 다음으로 철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해외 명품 이탈이 현실화되면 면세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면세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고, 공항면세점 매출조차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품 브랜드의 철수까지 이어지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여기에 중국 대리구매상들은 시내 면세점에 30%대의 수수료까지 요구하고 있다. 과거 중국 대리구매상들은 코로나19 확산 이전 상품 가격의 15~20%를 수수료로 가져갔지만, 최근에는 30%대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LG생활건강은 중국 대리구매상의 제품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루이비통 철수로 면세점, 백화점 등 유통업계 모두 긴장하고 있다”며 “아직 해외 명품 브랜드 이탈 소식은 없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면세점은 지금 중국 대리구매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근에는 과거 대비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으나 대리구매상이 떠나면 면세점 매출은 마이너스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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