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에서 중고차 시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외됐지만 공회전만 수 년 째
향후 시장 진출 여부 결정 시 대비해 준비 작업 착수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국내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정부의 늑장으로 정체돼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사업준비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여론이 나쁘지 않은데다, 향후 시장 진출 여부가 결정됐을 때를 대비해 더 이상 준비를 늦출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와 전북 정읍시에 자동차매매업 등록을 신청했다. 사실상 중고차 시장 진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대글로비스는 중고차 거래 플랫폼 ‘오토벨’을 론칭했다. 오토벨은 현대차가 직접 중고차 매매에 나선다기보다는 매매업체에 판로를 제공하는 성격이 강하다. 중고차 시장 직접 진출보다 상생을 위한 성격이 크지만, 기존 중고차 시장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허위매물 방지 장치 등이 마련돼 있다. 중고차 시장 진출과 오토벨을 연결하는 해석들도 나온다.
사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움직임은 예상됐던 부분이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지난해 12월 한 포럼에 참석, “국내 완성차업계는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현대차가 새해를 맞아 중고차 시장 진출 준비에 나서는 이유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고차 시장은 지난 2019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돼 대기업이 관련 사업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중고차 업계의 반발로 2022년인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는 사안이다. 이후 ‘상생협력위원회’를 통해 협의를 진행하다가 중고차 업계 불참으로 무산됐고 정부도 명확하게 결론을 짓지 못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 60대 가장이 1톤 트럭을 강매당한 후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비극까지 일어났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매매업 등록은 중고차 사업개시가 아니라, 시장에 진출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준비 작업일 뿐”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현대차 움직임에 ‘사업개시 일시 중지’ 조치를 취했지만, 현재 진행하는 작업들 자체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야말로 사업을 개시했다기보다 이를 위한 준비작업에 지나지 않고, 규정대로라면 정부는 지난해 5월까지 생계형 적합업종 여부를 최종 결론을 냈어야 한다는 이유다.
특히 여론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 현대차가 관련 사업준비를 자신 있게 밀고 가는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4월 소비자주권회의가 20~60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6.1%가 완성차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입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반대는 16.3%에 불과했다. 또 79.9%가 혼탁한 시장이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중고차 시장의 문제를 ‘일부일탈’으로만 치부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는 오는 3월 중 심의위원회를 열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다시 논의키로 했다. 현 정권에서 수 년 간 답보상태를 이어온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가 결국 대선 이후에나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소비자들이 사실상 아군이고 이미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외 결정이 난 지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현대차가 그대로 사업준비에 나서는 것으로 본다”며 “결국 다음 정권으로 해당 문제가 넘어가게 됐는데 해당 문제는 정치가 아닌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