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페이스샵·이니스프리·네이처리퍼블릭 등 로드숍 가맹점수 해마다 줄어
1020세대도 로드숍 대신 백화점···해외에선 “K뷰티 끝났다” 지적도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편의점과 비슷하게 골목마다 자리 잡았던 국내 화장품 로드숍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주요 화장품 로드숍들은 CJ올리브영, 시코르 등 대형 화장품 편집숍과 샤넬·디올·입생로랑 등 해외 화장품 브랜드에 밀리는 분위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원브랜드보다는 다양한 비교거리가 있는 곳을 선호하고 있어 주요 로드숍 매장들이 잇따라 폐점되고 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더페이스샵·이니스프리·네이처리퍼블릭·미샤·토니모리·스킨푸드 등 국내 주요 화장품 로드숍 가맹점수는 2018년 3394개에서 2019년 2899개, 지난해 2298개로 해마다 줄고 있다. 과거 명동, 강남, 홍대 등 상권에서 골목마다 볼 수 있었던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국내 주요 화장품 로드숍 매장수 추이.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 표=김은실 디자이너
국내 주요 화장품 로드숍 매장수 추이.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 표=김은실 디자이너

이날 기자가 강남, 홍대 상권을 둘러본 결과, 주요 화장품 로드숍들은 잇따라 폐점하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로드숍 매장에 찾았던 1020세대 여성 고객들도 로드숍 대신 CJ올리브영, 시코르 또는 백화점을 찾아 구매하고 있다.

중학생 이아무개씨(14)는 “친구들도 올리브영에서 프리미엄 화장품을 구매한다”며 “저렴한거 여러개 사는 대신 용돈모아 맥(3만원대) 제품을 사는게 낫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서아무개씨(17)는 “요새는 화장품뿐 아니라 가디건 같은 옷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잘 안산다”며 “친구들이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사니까 같이 사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로드숍 브랜드의 인기 하락은 단순 ‘코로나19로 인한 화장품 수요 감소’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 급감, 오프라인 매장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럭셔리 화장품 수요는 꾸준히 커지고 있어서다.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하고 해외직구(해외직접구매)로 빠지는 수요도 큰 편이다.

7일 홍대입구역 골목, 스킨푸드가 폐점했다. / 사진=한다원 기자
7일 홍대입구역 골목, 스킨푸드가 폐점했다. / 사진=한다원 기자

강남역 부근에서 로드숍 브랜드를 운영하는 점주는 “예전에는 구경하는 손님들이라도 있었지만 요새는 아예 손님 발길이 끊겼다”며 “인기있던 제품들도 이제는 재고가 쌓여가는 중”이라고 했다.

영국 패션 전문지 패션 오브 비즈니스(BOF)는 “스킨케어, 마스크팩 등으로 10년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한국 화장품 시장은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며 “K뷰티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은 잇따라 배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통상 이커머스에서 일반 택배 배송으로만 상품을 판매해왔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포화상태고, 화장품 소비 트렌드도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샤는 O2O 서비스 김집사와 손잡고 배달 서비스를 시행했고, 토니모리도 배달의민족 B마트를 통해 실시간 배송 서비스를 론칭해 배달 가능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뷰티업계 빅2인 아모레퍼시픽은 자사 브랜드 아리따움을 배달의민족, 요기요에 입점시켜 퀵커머스를 시작했다. LG생활건강도 퀵커머스 관련 상표권을 출원한 만큼, 조만간 더페이스샵과 같은 자사 브랜드 배송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럭셔리 화장품이 젊은 층에도 인기를 얻고 있어 로드숍 브랜드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일부 브랜드들은 수익원 창출을 위해 건강식품이나 이종 산업에 진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로드숍 브랜드가 올리브영에 입점됐다. / 사진=한다원 기자
로드숍 브랜드가 올리브영에 입점됐다. / 사진=한다원 기자

해외에서도 국내 로드숍 브랜드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있다.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의 주축이었던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설화수, 후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만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저가 브랜드는 중국에서도 잘 만든다는 인식이 중국 고객들 사이에서도 커져 한국 화장품은 프리미엄 라인에만 기대하는 상황이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중국인 텅안니(26)씨는 “한국 화장품을 티몰이나 알리바바에서 예전에 자주 구매했는데 이제는 한국 화장품은 설화수, 후 등에만 관심있어 한다”며 “면세점에서도 이제는 굳이 한국 화장품을 구매하기보다 디올, 입생로랑 등 SNS에서 유명한 제품들을 구매하는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로드숍 브랜드가 국내외서 예전만큼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내세워야 한다고 분석한다. 이미 국내에서는 올리브영·해외 유명 브랜드에 쏠리는 현상이 시작됐고, 중국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들의 온라인 매장 개설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로드숍 브랜드들은 저가 위주인데 예전에는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오프라인 점포를 찾아 구매하는 것을 즐겼다면 요새는 제품을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외국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인기가 높아지면서 로드숍 대신 백화점, 올리브영에 찾아 구경하며 구매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백화점이 체험형으로 바뀌고 있듯 로드숍 브랜드도 소비자들이 찾아와야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며 “다만 이미 로드숍 브랜드가 차별점을 내세우기엔 늦은 것 같다. 앞으로 로드숍 브랜드의 부진, 점포 폐점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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