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남편 수익자 보험 가입 후 교통사고 사망···법원, 보험사 측 '서면동의 흠결' 주장 받아들여
“망인, 보험내용 이해하고 동의했다 보기 어려워”···“도박보험 위험성 제거 위해 동의 여부 신중히 판단”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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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캄보디아 출신 만삭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남편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사망한 아내가 수익자를 남편으로 하는 청약서에 직접 서명한 것은 인정된다면서도, 보험 내용을 이해하고 진정한 의사로 동의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봤다.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에서 ‘동의’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부(재판장 황순현 부장판사)는 남편 A씨가 미래에셋생명보험을 상대로 “4억6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아내의 서면 동의에 흠결이 있다는 보험사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을 제한 없이 허용할 경우 피보험자 살해의 위험성, 도박보험의 위험성, 선량한 풍속을 해할 위험성 등이 있다”며 “이러한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 피보험자인 ‘타인의 동의’는 각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한 후 진정한 의사로 이루어진 동의를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아내는 캄보디아인으로 2008년 대한민국에 입국할 때까지 언어나 문화, 생활환경, 보험제도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보험계약 당시에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상대방과 한국어로 의견을 나누어 명백한 의사를 밝힐 정도로 소통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설계사 역시 ‘자신이 망인의 손을 붙잡고 서명을 했다’고 진술하는 등 망인은 보험계약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망인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언어, 환경, 사회구조, 법률체계 등이 전혀 다른 타국에 온 지 3년가량 뒤에 피보험자란에 서명했고 그 보험계약은 망인이 사망할 경우 수십억원이 지급될 수 있는 것이다”며 “도박보험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망인과 같은 피보험자로 하는 거액의 생명보험계약을 체결 할 때는 보험사도 그들의 모국어로 된 약관을 제시하거나 통역을 하는 등으로 피보험자의 진정한 동의 의사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보험자의 동의 여부를 판단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에 있어 피보험자인 망인의 동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의 항변은 이유가 있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의 사건은 이른바 ‘만삭아내 살해’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2014년 8월23일 승합차를 운전하다가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았고, 동승했던 임신 7개월의 아내(당시 24세)가 숨졌다.

검찰은 A씨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아내를 피보험자로, 자신을 수익자로 하는 보험 25건에 가입한 점 등을 들어 살인·보험금 청구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는데, 대법원은 ‘범행동기가 선명하지 못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친 끝에 A씨는 지난해 3월 살인·보험금 청구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에 대해서는 금고 2년의 형을 확정 받았다.

한편 A씨가 삼성생명보험을 상대로 한 별개의 30억원대 소송은 지난해 10월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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