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원 “학원·독서실 등 방역패스, 학습권·직업선택·신체자유 침해” 지적
헌법소원 청구 취지와 유사···‘학습시설’ 부분 인용 가능성 배제 못 해
사익 침해 압도하는 공익 논리 있는지 쟁점···정부 “일상회복 위해 방역패스 확대 필요”

법원이 학원 및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지난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안내문을 제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학원 및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지난 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관계자가 방역패스 안내문을 제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법원이 학원과 독서실 등 학습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적용에 제동을 걸었다. 학습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것인데, 유사한 취지로 제기된 헌법소원청구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 부장판사)는 전날 A씨 등 5명이 질병관리청장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한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 중 학원, 독서실, 스터디 카페를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로 포함시킨 부분은 본안 판결 선고일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며 일부인용 결정했다.

정부의 방역패스 처분 취소를 구하는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방역패스의 효력을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합리적 이유 없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평등원칙을 선언하고 있다”며 “따라서 국가기관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의 국민을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은 위헌·위법한 조치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이어 “백신 미접종자 중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해 진학시험, 취직시험, 자격시험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이나 직업교육 내지 직업훈련을 수행하려는 사람은 그 시설을 이용한 학습권이 현저히 제한되므로, 사실상 그들의 교육의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하는 조치에 해당한다”며 “의사에 관계없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므로, 백신 접종이라는 개인의 신체에 관한 의사결정을 간접적으로 강제받는 상황에 처하게 돼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는 백신미접종자 집단에게만 중대한 불이익을 주는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백신 미접종자들의 학원·독서실 등에 대한 이용마저 제한해 그들의 학습권과 직업의 자유 등을 직접 제한하는 중대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정도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하려는 백신미접종자에게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코로나 감염율과 위증중률 등이 현저히 상승하는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악영향을 초래하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방역패스가 학습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포함해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의 결정 요지는 지난달 국민 450여명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 근거들과 상당부분 유사점을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청구인들은 방역패스가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동의 자유,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인들은 청구서 ‘교육을 받을 권리 침해 여부’ 부분에서 “방역패스에 따르면 12~18세 청소년 중 접종미완료자들은 학원, 독서실, 스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 과학관 등의 출입이 제한된다. 사실상 학습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된다”며 “대학생들이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간을 분할하거나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등의 합리적인 방안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는 수단의 적절성과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교육을 받을 권리, 직업선택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다”고 주장했다.

현재 헌법소원 사건은 헌재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책이나 입법활동을 할 때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방역패스를 통해 보호하려는 공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논리와 근거를 충분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정부의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한 법원결정에 보건복지부 측에 즉시항고를 지휘했다. 법무부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가 방역체계의 중대성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민 대부분이 백신 접종을 하는데 미접종자의 위험성을 판단한 부분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일상회복을 이루기 위해 방역패스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의 방역 상황을 안정화하고 다시 일상회복을 재개하려면 방역패스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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