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원 “정신적 피해 명백”···사업자·소비자 수용할지 미지수
환경부 위해성 조사 결과도 주목···“위자료 규모 대폭 늘어날 수 있어”
사기·업무상과실치상 등 경찰 수사, 공정위 행정제재도 남아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기준치의 612배가 넘는 환경호르몬이 나와 논란이 됐던 아기욕조 제조사와 유통사는 소비자들에게 5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 결정이 나왔다. 사업자와 소비자가 조정 권고를 받아들이면 원만히 사태가 해결될 수 있지만, 위해성에 대한 환경부 시험결과에 따라 관련 민사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련 고소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가능성도 남아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조정위)는 지난 27일 논란의 아기욕조 제조사인 A사와 중간유통사인 B사에 대해 내년 2월21일까지 정신적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위자료로 각 5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피해자 4000여명이 모여 한국소비자원에 제기한 집단분쟁조정 결과가 나온 것이다.
조정위는 욕조 사용으로 사용자들의 신체에 직접적인 침해 결과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조정 신청인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게 인정된다고 밝혔다.
A사 등이 조정안을 수락하면 보상계획서를 조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지급액은 약 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조정위 결정은 권고 사항으로 강제력이 없다. A사 등과 신청인들이 조정에 동의하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하지만, 양 측 누구라도 불복할 경우 관련 민사소송이 계속될 수 있다. 이번 집단분쟁조정을 진행하고 집단 민사소송을 준비 중인 이승익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내년 1월 7일까지 피해자들의 의견을 받아 민소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민사소송은 환경부 추가 시험결과에 따라 청구액이 대폭 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환경부는 경찰청의 의뢰로 아기욕조 제품 이용과 신체상 피해와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한 시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경찰 측에 공유된 상태다. 시험결과는 경찰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익 변호사는 “실험을 통해 제품의 사용과 신체 피해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신체상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위자료 액수가 대폭 늘어날 것이다”고 밝혔다.
시험결과는 피해자 측이 제기한 형사고소에도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서울경찰청은 피해자들이 제조업체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처벌해 달라는 고소사건을 수사 중이다. 피해자 측은 또 제조업체가 허위표시 광고를 한 책임을 묻겠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한 상태다.
이 변호사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경찰의 수사결과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확인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조정위가 피해자들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한 만큼 남은 형사고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처분 등 결과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해 12월10일 A사가 제조한 ‘아기욕조 코스마(KHB_W5EF8A6)’ 배수구 마개에서 기준치 612배가 넘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성분이 검출됐다며 리콜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제품은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다이소에서 ‘물빠짐 아기 욕조’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제품은 싱크대에 딱 맞는 크기, 가격 대비 좋은 성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맘카페 등에서는 ‘국민 아기욕조’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