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내달 108개 제약사에 고지 예정···“재처방과 재조제 지원비용, 제약사 부담 맞다”
제약업계, 구상금 납부와 행정소송 제기·승소 가능성 판단 등 삼중고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제약업계가 정부의 구상금 청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건당국은 불순물이 검출된 약제에 대한 재처방과 재조제를 지원한 대금 29억여원을 108개 제약사들에게 청구할 예정이다. 반면 제약업계는 정부의 구상금 청구가 부당하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소송 제기 가능성도 거론된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2021년 제27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애인 치과 진료 수가 개선방안과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22년 시행계획 수립안을 의결하고 두경부 초음파 건강보험 적용방안과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 추진방안, 불순물 검출 약제 관련 조치 현황 및 향후 계획 등을 보고 받았다.
이중 제약업계와 연관이 깊은 사안은 불순물 검출 약제 조치 현황 및 계획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이후 불순물이 검출된 약제는 총 5건이다. 발사르탄 제제(2018.7월)와 라니티딘 제제(2019.9월), 니자티딘 제제(2019.11월), 메트포르민 제제(2020.5월), 로사르탄 제제(2021.11월) 등이다.
복지부는 그동안 시중 유통 의약품에서 불순물이 검출되는 경우, 환자 편의와 요양기관 혼선을 고려해 다시 처방이나 조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 2019년 9월 발사르탄 제제 제조업체 69곳에 구상금 20억3000만원을 청구한 데 이어 라니티딘, 니자티딘, 메트포르민 등 3개 성분 재처방과 재조제에 따른 구상금을 제약사들에게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점은 오는 2022년 1월이다. 대상 제약사는 108곳이다. 구상금은 29억원 규모다. 구상금이란, 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해 채무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을 지칭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불순물이 검출된 의약품을 제조한 제약사가 재처방과 재조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다”며 “건보공단의 구상금 산출 절차가 마무리돼 내년 1월 통보할 예정”이라고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108개 제약사에는 일부 중복되는 제약사가 포함됐지만, 업체별 구상금 규모 등 세부 내역은 알지 못한다”며 “제약사 소송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그동안 해당 의약품에 대한 보험급여 중지 조치와 잔여 의약품 재처방과 재조제 비용을 지원하며 구상금 청구를 시사해왔다. 특히 지난 9월 제약사들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발사르탄 제제 구상금 채무부존재 행정소송 1심에서 제약사들이 패소한 것이 이번 복지부의 29억원 구상금 청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복지부의 구상금 청구 방침 발표에 제약사들은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사태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우선 해당 제약사들은 건보공단이 예정대로 내년 1월 구상금 내역과 납부 일정을 공지하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한 일단 납부해야 한다. 직접 비교는 힘들지만 발사르탄 제제 구상금을 보면 대원제약(2억2700여만원) 등 1억원 이상 제약사가 6곳이었다. 상위권 제약사가 아닌 경우 부담되는 구상금 규모다. 제약사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느냐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복잡한 내부 검토와 논의 끝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대정부 행정소송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소송은 정부 정책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인데, 외부에서는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보수적 업계 풍토에서 심사숙고를 거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행정소송”이라고 강변했다.
이처럼 정부 상대 행정소송 방침을 확정하면 이후에는 로펌을 선정, 가장 중요한 법정공방을 치러야 한다. 로펌에 지불하는 비용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소송에서 승소 여부다. 특히 앞서 언급대로 지난 9월 제약사들과 정부의 발사르탄 제제 소송 1심에서 패소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내년 초 또다시 소송 제기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발사르탄 소송에 참여했던 모 제약사 관계자는 “재판부는 불순물 의약품이 제조물 결함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약사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었다”면서 “하지만 제약사들은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불순물로 인한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며 실제 논란이 됐던 NDMA는 원래 국내외에서 관리기준이 없던 유해물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다음 달 건보공단으로부터 구상금을 고지 받은 제약사들이 행정소송에 따른 득실 여부를 면밀히 따진 후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지난 2019년 10월 건보공단이 발사르탄 제제 구상금을 고지한 제약사 69곳 중 소송에 참여한 업체는 36곳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순물 검출의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다음 달 건보공단이 제약사에 대한 고지를 시작하면 업계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