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자 표심 때문에 결정 미룬다는 의견도
에디슨모터스, 자금조달줄 막힌 가운데 대선 이후 일자리 무기로 지원책 요구할 듯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자동차 업계에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쌍용자동차 인수 등 굵직한 이슈들이 진행 중인 가운데 내년 대선까지 시간을 끌며 추이를 지켜보거나, 상황 반전을 노리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내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지난 23일 열린 포럼에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등 중고사 사업 진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중고차 판매업의 경우 2019년 생계형 판매업종 지정이 만료되면서 대기업 진출 판로가 열렸지만,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결론을 3년 넘게 미루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시장 진입에 법적 문제가 없는 만큼, 정부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우선 필요 준비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가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진입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표심 관리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선 전에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할 경우 자칫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표를 뺏길 우려가 있어서다.
현재 영세 중고차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10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를 발족해 수차례 간담회를 가졌으나,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 중고차업계는 완성차의 시장 진입을 큰 틀에서는 합의했으나, 거래 대수 규제 및 중고차 매입 방식 등에서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양 측은 완성차 업계의 시장 점유율을 최대 10%까지 늘리기로 동의했지만 그 기준이 되는 차량 거래 대수의 경우 완성차 업계는 전체 시장 규모인 250만대로, 중고차 업계는 사업자 거래 매물 기준인 130만대로 한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즉 완성차 업계는 25만대 규모의 시장을 요구했고, 중고차 업계는 13만대로 제한했다.
또한 중고차 업계는 거래 대수만큼 완성차 업체의 신차 판매권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소비자가 ‘트레이드 인’ 방식으로 신차를 사며 내놓은 중고차를 완성차 업체가 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는 오직 중고차 매매업계와 공유하는 오픈 플랫폼을 통해 차량을 판매해야 하며, 완성차 업체도 플랫폼에서 중고차를 매입해 인증 중고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처럼 중고차 업계가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어, 자칫 정부가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진출에 손을 들어줄 경우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반발이 거세 표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완성차 업계도 내년 중고차 진출을 선언했지만, 중기부에서 다시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할 경우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에 일각에선 이번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이 정부 압박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의 경우 국민들에게 큰 공감을 받고 있으며, 이번 완성차 업계의 공식 진출 발표 이후 긍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다”면서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중고차 판매업자들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미루고 있지만, 대선이 끝나면 결국 완성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쌍용차 인수 일정이 지연되는 것도 내년 대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쌍용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에디슨모터스는 인수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당초 에디슨모터스는 11월 초에 2주간 정밀실사를 진행한 후 11월 말이나 이달 초 본계약을 체결해, 연말에는 법원에 회생계획안을 제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정밀실사 기간을 2주 연장하고, 그 과정에서 추가 부실이 발견됐다며 인수금액 삭감을 요구하면서 또다시 일정이 지연됐다.
이에 본 계약 체결도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에디슨모터스는 쌍용차 인수 본계약 체결 기한을 12월 27일에서 내년 1월 10일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했으며 법원도 이를 수락했다.
관련해 일각에선 에디슨모터스가 의도를 갖고 쌍용차 인수 일정을 늦추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은행이 쌍용차 대출관련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최근 평택시도 평택공장 부지 개발에 대해 “동의한 적 없다”며 선을 그은 상황에서 에디슨모터스는 사실상 자금조달 통로가 막힌 상황이다.
이에 내년 대선 전후로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차 일자리를 무기로 삼아 정부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있다.
쌍용차를 인수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 없는 가운데, 에디슨모터스가 인수를 철회한다면 최악의 경우 회사 파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 3분기 기준 쌍용차 임직원수는 총 4550명이며, 여기에 1·2·3차 협력업체 등을 포함하면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