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 속 일자리 문제 부각···현재 공공일자리 수준으론 생계 한계
민간부문 노인 일자리 확대 필요성···“다양한 일 가능, 기업 편견 바꿔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하루 3만원 되는 일 있음 폐지를 왜 주우러 다니나.”
9일 오후 서울 외곽의 한 재활용품 집하장 인근 골목. 60~70대로 보이는 노인 3명이 리어카에 모은 폐지를 팔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60대 할머니 A씨는 “이건 내 일이다보니 일하는 시간이 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하루에 7~8시간 정도는 돌아다니는 것 같다”며 “내 일이다 보니 하는 만큼 번다”고 말했다.
하루에 어느정도 수입이 되냔 물음엔 “그날그날 일한 정도에 따라 차이가 많아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3만원정도 수입은 가능하냐고 재차 묻자 “어휴”라고 고개를 저으며 “3만원 주는 일 있으면 이 일 안한다. 작년 (폐지 등 재활용품이) 쌌을 땐 하루에 5000원도 못 벌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노인은 “집에서 놀고 있느니 밖에 나와 한 푼이라도 번 단 생각에 하는 거지 돈 벌 생각으론 이 일 못 한다”고 말했다. 정부 일자리 사업에 대해선 “그건 잘 모르겠는데 우리 같은 노인네 써 주겠나”라고 했다.
인구 고령화로 고령층 일자리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공공 노인 일자리가 노인층이 생계를 유지하기 부족한데다 이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한 사회적 취약계층 노인들은 기본적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공공일자리 위주로 제공되는 노인 일자리를 민간 영역에서도 활성화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향후 50년간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815만명인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엔 1000만명을 돌파하고 2049년엔 1901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총인구의 15.7% 수준인 고령인구 비율은 2070년이 되면 절반 가까운 46.4%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구조를 주도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현재 노인 일자리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단 분석이다. 고령층이 버는 돈이 다소 부족한 걸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로 뒷받침하는 현재 시스템에서 노인 생계는 오롯이 자신이 책임지는 상황이 된 단 것이다.
하지만, 현재 노인 계층의 일자리는 대부분 열악한 게 현실이다. 산업 주요 분야에서 활약했더라도 은퇴 이후엔 상당수 고령층이 단순 업무 일자리로 옮겨가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사회 취약계층 노인들은 일자리 자체를 구하기 어려워 연금이나 자녀 뒷받침이 없다면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계가 위협받는 실정이다.
노인 공공 일자리는 노동강도는 비교적 강하지 않지만 급여 수준이 부족하단 지적이 나온다. 노인일자리사업으로 7개월째 사립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70대 여성 B씨는 “오전 반나절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돌보고 그밖에 정리정돈 일도 조금씩 한다”며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며 손주 생각도 나고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달 30만원 정도 버는데 아주 못버는 것보단 낫지만 월급 액수가 아쉽긴 하다”며 “그나마 남편이 아직 돈을 벌고 있어 살림 유지는 된다”고 덧붙였다.
광진시니어클럽 관계자는 “노인일자리의 경우 민간보단 공공일자리가 많고 직종별론 어린이집이나 지역아동센터 등 영유아 어린이 보육 관련 수요가 많은 편이다”며 “어르신들을 채용한 업체들의 만족도는 높고, 어르신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라 딱히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공공형과 사회서비스형, 민간형 일자리로 나눌 수 있다. 이중 공공형 일자리 비중이 가장 높다. 공공형 일자리는 2019년 기준 약 50여만개가 창출되는 등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공공형 일자리 중 공익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노인 일자리의 70%에 육박한다.
공공형 일자리는 고령자 노동시장에서도 가장 취약한 집단인 여성과 저숙련 노동자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고령층 비율 상승을 고려했을 때 민간에서 노인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 노인취업 관련 기관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다양한 직종에 도전할 수 있고 많은 걸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장, 시장에선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도 있어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경비원이나 주유원, 청소원 등 단순 노동 뿐 아니라 아직 발굴하지 못한 다양한 일자리를 찾아 혜택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방역이나, 도보 배달, 플랫폼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란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어떤 사람에겐 소중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현재 일자리를 원하는 고령층들은 지역별 기관을 통해 취업 연계나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해 채용지원서류 작성법 등 소양교육과 조리기능사와 주택관리사 등 직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노인일자리 사업은 지속가능한 양질의 민간형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란 전문가 조언이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공공형 일자리는 고령자 노동시장에서의 부정적인 고용 충격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령자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인 여성과 저숙련 노동자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단 것이다.
다만 공공에 더해 민간에서도 양질의 노인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노인 인구 증가 추세를 봤을 때 공공만이 일자리를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
현재 노인하고 미래 노인의 특성이 달라진단 점을 고려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단 조언이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는 숙련도 수준이 좀 낮은 일자리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향후엔 베이비 부머 등 숙련된 노인들이 많이 진입하기에 고급이나 중급 기술을 이용하는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공적 서비스 중심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서도 노인들 정책적으로 민간에서도 고령자들이 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도록 정부가 정책적으로 푸시를 하면서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지금은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각하지만 향후엔 인력 부족 문제가 드러날 텐데 그땐 자연스럽게 노인 일자리가 민간에서 생길 것”이라며 “이 경우 민간에서는 고령층을 활용하거나 유인하기 위해 고급 숙련 고령자들을 위한 근무 환경이나 지원책을 강화하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