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강제성 지닌 ‘경품고시’ 수준 규제안 전망
방통위 “사업자 의견 들으며 방향성 확인하는 단계”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알뜰폰 사은품 마케팅’ 규제 논의를 본격화했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선 시장과 같은 ‘경품고시제’가 도입될 것이란 전망이다.
8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방통위는 최근 이통사 및 알뜰폰 사업자들과 ‘알뜰폰 사은품 가이드라인’ 마련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알뜰폰 시장에서 과도한 사은품 마케팅을 벌이는 것과 관련해 시장 교란 행위를 막겠단 취지다. 알뜰폰 시장에서 이통사 자회사뿐만 아니라 KB국민은행 등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벌이는 과도한 사은품 경쟁을 제한하고 상품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달 첫 주 기준 알뜰폰 가입자는 1007만명을 기록했다. 알뜰폰 업계는 저렴한 가격고 무약정 등을 무기로 빠르게 가입자를 확보했다.
최근 알뜰폰 가입은 이통사 자회사(SK텔링크, KT엠모바일, KT스카이라이프, 미디어로그, LG헬로비전 등 5개)와 같은 대기업으로 쏠리고 있다. 2019년 37% 수준이던 이통사 자회사의시장 점유율은 지난 7월말 기준 46.6%까지 늘었다.
KB국민은행 알뜰폰 ‘리브엠’도 사은품 마케팅으로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뜰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리브엠의 신규 가입자 수는 약 2만5000명에 달한다. 통상 매월 5000명대 가입자를 유치하던 것과 비교하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대기업 쏠림 현상에는 마케팅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동통신 시장과 달리 약정기간이 없는 알뜰폰 시장은 경품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이통사 알뜰폰 자회사 합산 점유율을 50%로 제한하는 ‘점유율 규제’를 넘어 이통사 자회사의 알뜰폰 사업 철수 주장까지 제기됐다. 알뜰폰 시장이 자본력을 지닌 이통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등 공정경쟁이 저해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방통위는 올해 초 사업자들을 불러 모아 월 3만원 수준을 넘지 않는 사은품을 제공하라는 구두 경고를 내렸지만, 과열 경쟁속에 가이드라인은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뜰폰업계는 방통위가 법적 강제성을 지닌 경품고시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품고시가 시행돼야 사은품 마케팅이 아닌, 요금 상품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단 점에서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 마련에 그치진 않을 거란 분석이다.
방통위가 지난 2019년 제정·시행한 경품고시는 유선 서비스에 한정해 운영되고 있다. 경품 금액이 높더라도 상·하한 15% 범위에서 지급도록 한 것이 골자다. 예컨대 전체 평균 경품이 30만원일 경우 이용자들에게 평균 25만5000~34만5000원 사이에서 지급해야 한다.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사은품 경쟁이 일어나도 방통위가 주의하라고 경고하면 사업자들이 잠깐 자제했다가, 다시 지급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알뜰폰 규제에 드라이브를 거는 분위기라서, 유선시장의 경품고시와 같이 법적 강제성이 있는 제도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경품고시가 시행될 경우 사업자들이 경품 경쟁이 아니라 고객 니즈에 맞는 특회된 요금제를 발굴하는데 비용을 쓸 수 있단 기대효과가 있다”며 “또 이 시장엔 충성고객이 거의 없다는 게 알뜰폰 사업자들의 딜레마다. 알뜰폰이 무약정이라 2~3개월 유지하다가 더 좋은 경품을 주는 곳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가입자가 빠지면 마케팅비를 쏟아 부어서 가입자를 유치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경품고시를 도입하면 이런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품고시가 도입되면 알뜰폰 시장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알뜰폰이 1000만 가입자를 넘었다곤 하지만 언제든 내려갈 수 있는데, 경품고시가 도입되면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사은품 가이드라인을 마련할지 유선 시장과 마찬가지로 경품고시를 도입할지 고심 중이다. 특히 지원금 상한선 등을 규정하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있음에도 알뜰폰 시장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단 점에서 새로운 규제체계를 정립할 계획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관련 회의는 2회 진행했다. 국정감사 등 외부에서 사은품 경쟁 관련 지적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며 “유선 쪽은 경품고시가 있지만 알뜰폰은 규제체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아무것도 정리된 게 없다. 이 때문에 단통법의 근본부터 살펴본 뒤 규제체계를 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업자 자율로 개선되는 부분도 있지만, 정부에서 움직이고 있단 시그널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다만 아직은 논의 초기 단계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보다는 사업자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면서 방향성을 확인하고 있다. 방향을 정한 뒤 사업자 의견 청취나 고시 시행 등 타임라인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