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업종·직종·사업장 규모별 발생 격차···“화학제품 취급 업종 발생비율 높아”
고혈압 등 산재 인정 애매한 경우도···“산업안전교육 강화, 장시간 노동 근절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이 다음달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산업재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요 발생 업종과 직종 등이 비교적 뚜렷한 산재 특성을 감안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가운데 산업안전교육 강화와 장시간 노동 근절을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단 조언이 나온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노동계는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에서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 3주기 추모제를 지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모두 중대재해법 등 산업재해에 대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최근 국민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산업 재해 발생 비율은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산업과 직종, 사업장 규모에 따라 격차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중량물이나 화학제품을 많이 취급하는 금속·자동차·운송장비 제조업, 화학공업 등에서 산업재해 비율이 높았다. 또 다수직종이 생산직, 단순직, 서비스직인 사업체에서 산재율이 높았고, 판매직, 전문직, 사무직이 다수인 사업체들에선 산재가 비교적 적게 발생했다.
남성노동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고령노동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주당 노동시간이 길수록, 산업안전보건교육을 시행하지 않을수록 산재율이 높았다. 대규모 사업장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사업체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했다.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공공기관은 민간 기업보단 이윤에 덜 민감하다보니 노동 강도도 비교적 약하고 산업 안전과 관련한 것들을 좀 더 잘 지킬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장 규모가 너무 작으면 사업체 여력이 안 돼 기본적 안전 설비를 갖추는 데 소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가 산업안전 분야에서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단 설명이다.
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유형은 각양각색이다. 안전 설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근로자 실수로 다치는 경우, 근로자가 잘못 했더라도 난간 같은 안전 설비가 없어 떨어져 다치는 경우 등 다양하다. 박경서 한국인사노무법인 노무사는 “웬만하면 현장에서 다치면 거의 다 산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예를 들어 근무 중 고혈압이 터졌을 경우 일 때문에 다쳤는지 개인 질병인지 애매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산업재해 사각지대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정책 설계를 통해 산재를 줄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론 장시간 노동을 근절한다면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단 조언이다.
대규모 사업체에서는 비정규직 비율과 산업 재해율 간 상관성이 발견된다. 이에 비정규직 남용 억제가 대규모 사업장에서 산업안전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규정 중 지켜지지 않는 게 너무 많은데 있는 제도를 잘 지키도록 해야 한다”며 “무조건 지키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기에 지킬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인구구조 변화로 고령층 증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향후 고령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고 위험이 높은 단순 반복적 직무는 자동화 등 기술적 보완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산업재해에 취약한 소규모 사업체, 생산직이나 단순직이 다수직종인 사업체, 제조업 사업체 등에 대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공공적 지원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단 것이다.
김 위원은 “현재 안전에 대한 기본적 투자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시계열적으로 보면 산재가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재해가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되는 재해마저도 상당히 은폐되고 있단 주장도 있다”며 “안전에 대한 물적 투자와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노무사는 “산재는 주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많이 나는데 정부가 이런 소규모 사업장에 산업안전 부분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예를들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안전 계획을 수립해 신청하면 정부가 70% 정도 지원하는 식의 제도를 마련하면 산업재해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달부터 중대한 산업 재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일각에선 사고가 주로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이 법 적용에서 제외되거나 유예되는 점을 들어 문제점을 제기한다. 하지만김 위원은 “중대재해법 관련 노동계 우려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무용론을 얘기하긴 이르다”며 “법이 이미 통과됐고 시행을 앞두고 있기에 중대재해법이 얼마나 현실에서 잘 작동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장 최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게 5인 미만 사업장에 바로 적용되면 사업장 내 혼란이 있을 수 있기에 절충안이 내려졌다고 본다”며 “적용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