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실적 사모펀드 사태 전인 2019년 수준 밑돌아
증시호황으로 직접투자 수요↑···ELT 판매 부진
증권사로 머니무브 현상 심화···대응책 마련 고심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서울 본사 전경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시중은행의 자산관리(WM) 사업이 사모펀드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도 쉽사리 살아나지 않아 고민이 깊다. 증시 호황으로 직접투자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장점인 은행 WM의 매력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WM수수료수익은 1조1025억원으로 집계됐다. 사모펀드 여파가 컸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늘었지만 아직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9년 3분기에 비하면 약 12% 감소했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이 모두 줄었다. 사업이 역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WM 사업 가운데 신탁 부문이 쪼그라드 탓이다. WM수수료수익은 신탁·펀드판매·방카슈랑스 수수료수익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신탁이 절반 넘게 차지한다. 올해 3분기 신탁수수료수익은 5302억원으로 2019년 3분기 대비 10% 감소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은 사모펀드 사태 이후 당국이 신탁 부문에 규제를 가해 사업이 위축됐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은 신탁 상품 가운데 가장 수익성이 좋은 주가연계신탁(ELT) 판매 한도를 각 은행별로 정했다. 이에 은행은 ELT를 많이 팔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WM 성장이 어려워졌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ELT는 증권사가 발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을 은행이 인수해 특정금전신탁 계좌에 편입시켜 판매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올해 ELT 판매규모는 한도에 크게 미치지 못해 규제 탓을 하기 어려워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월 말 전체 은행 ELT 판매규모는 22조5256억원이다. 당국이 정해준 판매 한도가 34조원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대비 11조원 넘게 남은 셈이다. 아직 공시가 되지 않았지만 10월 말 기준으로도 한도가 약 9조원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ELT 판매가 잘 안되다보니 신탁 실적도 쪼그라들었다. 

자료=각 사 실적발표자료, 팩트북(factbook)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은행권은 주식시장 호황을 신탁 부진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중에 풀린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대거 몰리면서 유례없는 활황이 이어졌다. 코스피 지수는 최근 다소 주춤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3000선을 유지하는 중이다. 

증시가 호황을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펀드나 ELT 등 간접투자보다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특히 증시 호황기에 맞춰 우량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직접투자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ELT 등 은행 신탁을 활용하면 수익률 3~4% 정도를 거둘 수 있는데 최근 증시에 이 정도 수익률에 만족할 투자자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은행은 안정성을 중시한 자산관리를 할 수 밖에 없어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주식 열풍으로 자산관리 서비스 자체를 증권사에서 받기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퇴직연금 부문만 해도 작년부터 수익률 상위사는 모두 증권사로 채워졌다. 증권사는 증시 호황을 타고 상장지수 펀드(ETF)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시중은행은 WM사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분위기다. 최근 신한은행은 증권사처럼 퇴직연금 ETF 실시간 매매를 하려 했지만 금융당국이 막았다. 실시간 ETF는 위탁매매에 해당해 증권사의 업무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은행은 투자일임업을 허용해달라고 수년 전부터 당국에 요구하고 있지만 증권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자산관리사업부 관계자는 “최근 은행에서 증권사로 자산관리 고객이 이동해 은행들이 고민이 큰 상황이다”라며 “은행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더 나은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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