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 이어 IBK기업은행도 중도상환수수료 감면···우리은행, 검토중
與, 금융당국 및 시중은행에 동참 요구···“보여주기식 정책” 비판 다수

자료=한국은행/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자료=한국은행/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은행권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한 정치권의 압박이 신규 대출 규제를 넘어 기존 대출 상환 확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도상환수수료 폐지에 대한 주장이 확대되자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또는 감면 정책을 시행하는 은행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에서는 수수료 비용 산정 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으며 신규 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농협은행, 연말까지 면제···기업은행, 내년 3월까지 50% 감면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기존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감면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IBK기업은행이 외부 기관협약 대출을 제외한 모든 가계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를 50% 감면한다고 밝혔으며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8일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전액 면제한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의 수수료 감면 조치는 오는 9월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적용되며 농협은행은 이달 1일부터 연말까지 2달간 시행할 예정이다.

두 은행의 이러한 행보는 여윳돈이 있어도 중도상환수수료 때문에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고객들의 조기 상환을 유도해 가계대출 총량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특히 농협은행의 경우 지난달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전년 대비)이 약 7.07%로 금융당국이 권고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5~6%)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에 신규 대출 제한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에 대한 총량 관리도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달 국정감사 이후 이어져오고 있는 정치권의 압박도 시중은행들의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 기업은행 국정감사 당시 “중도상환수수료의 존재 이유는 은행에서 계획한 만큼의 자금 수요가 없을 경우 발생하는 리스크를 고객에게 지우기 위한 것”이라며 “현재는 자금 수요가 넘치는 상황으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지난달 28일에도 농협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결정에 대해 “결정을 환영한다”며 “기존에 대출받은 사람들이 조속히 갚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준다면 새롭게 대출을 원하는 실수요자에게 추가로 내줄 수 있어 가계부채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시중은행도 필요 경비를 제외한 중도상환수수료를 없애줄 것을 긴밀히 협의해달라고 금융위원회에 제안했다”며 금융당국과 타 시중은행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에 현재 우리은행의 경우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또는 감면에 대한 실질적인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경우 아직 특별히 확정된 사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출 규제 강화로 상환 후 재대출 여부 ‘불투명’···중도상환 증가 효과 미비 전망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감면 정책의 추가 시행 가능성과는 별개로 업계에서는 해당 조치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우선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하는 것 자체가 은행의 대출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동산담보대출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 번 대출을 시행하면 근저당권 설정 비용과 같은 부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며 “중도상환수수료에는 이러한 비용도 포함돼 있다고 보면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후 중도상환수수료 없이 고객이 대출을 상환하게 되면 대출 심사에 소요되는 인력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고정비용 등이 그대로 손해가 된다”며 “이러한 비용들을 고객 부담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수수료 50% 감면도 은행에게는 큰 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자 마자 타이밍 좋게 일부 은행들이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감면했다”며 “당과 의원 입장에서는 해당 안건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삼기 위해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미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신규 대출을 제한하는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취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융당국의 신규 대출 규제 정책 때문에 중도 상환 유도 조치들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언제 신규 대출 규제가 강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도상환수수료 조금을 아끼기 위해 덜컥 큰 금액의 대출을 상환할 차주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지금도 사실 중도상환수수료를 내고 상환하는 것이 이자를 모두 내는 것보다 금전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은 모두가 돈을 갖고 있다가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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