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하게 지점 폐쇄 인가로 철수 가능···HSBC, 1년만에 정리
가계대출 규모 10조원 이상 많아···대출 고객 혼란 불가피

자료=각 사/표=김은실 디자이너
자료=각 사/표=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철수 행보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소비자금융 부문의 단계적 페지(청산)가 폐업 인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함에 따라 한국씨티은행은 과거 HSBC(홍콩상하이은행)과 같이 지점 폐쇄 인가만을 거쳐 빠르게 철수 작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다만 자산규모와 영업점 수, 직원 규모 등이 당시 HSBC은행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은행 안팎에서 큰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은행권이 대부분 대환 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있어 기존 대출 고객들의 근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전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청산이 은행법 상 인가 대상인지 여부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씨티그룹이 한국시장 철수를 발표한 이후 세 차례 법률자문단 회의를 개최하는 등 관련 내용을 검토해왔고 그 결과 이번 사안이 은행법 제55조상 ‘은행업의 폐업’에 해당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씨티은행이 기업금융 부문에서는 영업을 이어나갈 예정이기 때문에 폐업이 아닌 ‘영업대상 축소’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상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청산 작업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고객 불편 최소화 ▲소비자 권익 보호 ▲건전한 거래 질서 유지 등의 내용을 담은 조치명령권을 발동하기는 했지만 결국 청산 작업 자체를 별도로 심사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국씨티은행은 지점 폐쇄에 대한 인가만을 거쳐 소비자금융 부문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 2014년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금융 부문을 철수시켰던 HSBC은행의 사례와 동일하다. 당시 HSBC은행은 2013년 7월 소비자금융 부문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난 후 이듬해 곧장 11개의 지점을 1개로 줄였다.

지점 폐쇄 인가시에도 ▲자산·부채 정리계획 ▲국내 채권자 보호 ▲내국인 근무직원 퇴직금 지급 계획 등을 살펴보지만 폐업 인가 절차에 비해서는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영업점을 133개에서 44개로 줄이는 대규모 점포 축소를 단행한 경험이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씨티은행이 HSBC은행과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만큼 철수 과정도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SBC은행이 소비자금융 철수 결정 이후 예금 금리를 낮추며 예금 고객부터 줄여나갔듯이 한국씨티은행 역시 예금 금리 인하 행보에 나설 수도 있다. 또한 HSBC은행이 철수 결정 직후 바로 대규모 명예 퇴직 계획을 발표했던 것과 같이 한국씨티은행도 대규모 명예 퇴직을 단행할 예정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가장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고객들이 일반 예금 고객들”이라며 “계약 기간이 정해져있는 적금과 대출보다는 일반 예금 고객들을 대상으로 그 규모를 축소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조 측의 반대가 강력하게 있겠지만 대규모 명예 퇴직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씨티은행지부 측은 금융위의 결정에 반대하며 강력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진창근 씨티은행 노조 위원장은 “금융위원회는 지금까지 한국씨티은행 직원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그들은 금융노동자의 대량 실업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씨티은행 측은 “노조 측과의 협의를 통해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잔류를 희망하는 소비자금융 소속 직원들에게는 행내 재배치 등을 통해 고용안정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의 청산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그 후폭풍은 과거 HSBC은행 사례보다 훨씬 크게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 HSBC은행의 경우 철수 직전 년도(2012년) 기준 총 자산이 22조4245억원에 불과했지만 한국씨티은행의 총 자산은 지난해 기준 69조5610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직원수도 770명과 3306명으로 큰 차이가 나고 소비자금융 부문으로 한정해도 2500명(노조 측 추산)으로 HSBC은행 전체 직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영업점 수도 11개와 43개로 3배 이상 차이나며 총 여신액과 수신액도 각각 4.63배, 12.22배 많다.

특히 최근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에 맞춰 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씨티은행의 기존 대출 고객들의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가계대출 여신액은 12조6509억원으로 HSBC은행이 철수할 당시(2조288억원)보다 10조원 이상 많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한국씨티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들의 대환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있어 향후 수많은 대출 난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우선 당장 대출 만기를 앞둔 고객들은 연장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과거 HSBC은행도 기존 대출 고객의 만기 연장을 허용해줬다. 다만 증액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모든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때문에 다른 은행의 차주들을 받아주기 힘든 상황이다”며 “디지털전환 흐름 때문에 은행권이 채용도 늘리지 않고 있어 기존 직원들의 재취업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PB(Private Banking)들은 기존 고객들의 자산도 함께 옮겨올 수 있다는 특수한 상황”이라며 “은행보다는 중소형 증권사들에서 주로 영업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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