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뱅크 대출 증대요구 거절···출범 1주일 만에 대출 중단
'가계대출 총량 관리' 원칙 지키다 실수요자 피해 커질 우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융당국이 결국 중·저신용자 대출만이라도 늘려달라는 토스뱅크의 요청을 거부했다. 토스뱅크는 개점한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이달 5일 출범한 토스뱅크는 대출 수요가 크게 몰리면서 며칠 만에 올해 대출 총액 한도인 5000억원이 거의 소진된 바 있다.
당국이 토스뱅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한 이유는 ‘가계대출 총량 규제’ 단 하나다. 가계부채 급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각 은행들은 당초 당국에 제출한 가계대출 총량 한도를 한 곳도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 그간 가계대출 관리 정책을 미뤄오던 케이뱅크도 최근 신용대출 한도를 고객 연봉 수준으로 줄였다.
당국의 규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드물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의 심화로 올해 가계부채 규모가 1700조를 넘어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득 대비 부채 증가 속도가 더 빨라 가계의 빚 갚는 능력도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대규모 부실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중·저신용자들이 대출을 막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최근 경기가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 터널을 지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내수 경기의 회복 속도가 더디면서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줄지 않고 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이들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당초 인터넷은행 설립 인가를 내준 이유로 내세운 것은 신용평가(CB) 점수 820점 이하의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이다. 하지만 토스뱅크가 당국에 제출한 올해 대출 목표치인 5000억원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중·저신용자 대출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다소 가혹한 조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토스뱅크가 당국에 요청한 증액 규모가 3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고려하면 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달 은행권 총 가계대출 잔액은 6조원 넘게 늘었다. 토스뱅크가 요청한 금액은 이에 5%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 규모를 세달 남짓한 기간 동안 대출해주겠다는 요청을 거부한 것은 지나친 원칙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다.
당국의 가계대출 조이기로 당장 돈이 필요한 서민들의 불만은 급증하고 있다. 당장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에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을 강화할 때 마다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라고 반복해서 밝혔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저신용자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면 결국 당국이 우려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원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원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