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강화하는 삼성전자 외주물량 노려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반도체 후공정 전문 조립·테스트 아웃소싱(OSAT) 업체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최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글로벌 1위에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후공정 처리 과정에서 외주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OSAT 업체들은 삼성전자 낙수효과를 전망하면서 매출 확대를 노린다.
반도체 후공정업체 엘비세미콘은 지난 28일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설비 증설 및 관련 토지, 건물 취득 목적으로 955억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부지는 경기도 안성시로 기계장비와 건물 등 신규시설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전문기업인 하나마이크론과 반도체 후공정 업체 네패스의 자회사 네패스아크도 증설에 나섰다. 하나마이크론은 지난달 25일 비메모리 테스트 신규시설에 1500억원, 네패스아크는 지난 10일 반도체 테스트 장비 투자에 995억원을 투자한다고 각각 공시했다.
반도체 제조 과정은 웨이퍼와 칩을 생산하는 전공정과 생산된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EDS)하고 패키징(포장)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이중 불량 칩을 선별하는 테스트 공정은 장치 산업이어서 라인 구축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OSAT 업체들이 파운드리 생산 역량 확대에 따른 테스트 외주화에 기대를 걸고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이다.
◇엘비세미콘·하나마이크론·네패스아크, 한 달 사이 잇따라 투자 공시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엘비세미콘은 투자를 통해 이미지센서(CIS),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테스트 장비를 확충할 전망이다. 총 투자액의 73% 수준인 700억원 정도가 테스트 장비 투자로 예상되는 가운데 CIS와 AP에 60%가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255억원은 공장 부지 양수 등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엘비세미콘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 매출 비중 80%에 육박한다. 최근 스마트폰에 멀티 카메라가 탑재되는 추세로 CIS 수요가 증가하고, AP 공급 부족 현상도 심화되면서 이들에 대한 테스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물량도 추가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마이크론은 지난달 공시한 투자를 통해 무선주파수(RF) 칩과 AP 테스트 시설을 증설한다. 하나마이크론이 수행하는 패키지 테스트는 최종 칩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는 작업이어서 패키징 공정 이전 웨이퍼 테스트보다 기술적 난도가 더 높다. 패키지 테스터 가격도 웨이퍼 테스터보다 더 비싸 진입장벽이 높다.
하나마이크론은 패키지 테스트에 대한 경쟁력을 인정받아 삼성전자에서 수주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마이크론 관계자는 “완전한 개념의 선제적 투자라고 볼 수는 없다. 고객사의 요구가 있었고, 어느 정도 물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테스트업체 네패스아크도 995억원을 들여 미국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 테라다인 등으로부터 테스트 장비를 공급받는다. 업계는 AP와 RF 칩 테스트를 위해 투자를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네패스아크의 지난 상반기 매출이 504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의 투자다. 회사 측은 이번 투자를 통해 “매출 및 수익성 증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확대로 테스트 외주 증가 예상
OSAT 업체들이 최근 보이고 있는 행보는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대규모 투자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분야 등 사업 주도권을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중 150조원이 반도체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후공정도 직접 수행하지만, 파운드리 사업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테스트 외주화 규모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는 테스트를 비롯한 후공정 작업의 중요성은 메모리보다 시스템반도체가 더 크다고 역설한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메모리는 똑같은 칩을 얹어서 MCP(멀티칩 패키지) 작업을 하는데, 시스템반도체는 종류가 훨씬 다양하고 EUV(극자외선) 공정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후공정에서 경쟁력이 결정되기도 한다”며 “퀄컴이나 엔비디아 같은 팹리스 기업들은 위탁생산을 맡길 때 패키징 후공정 기술을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 같은 IDM의 경우 최첨단 후공정이 필요한 하이엔드 제품은 내재화를 통한 수직계열화를 하고 있다”면서도 “전부 수직 계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후공정 업체들이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최근 한 달 사이 하나마이크론, 네패스아크, 엘비세미콘의 투자 공시를 언급하며 “테스트 서비스 공급사들의 관련 매출이 내년부터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전사적으로 후공정 분야에서 테스트 비중이 늘어나는 점이 마진 측면이나 기업 가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