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잘못, 기부는 기부 자체로 평가해야
'재벌은 무조건 욕먹어도 싸다'는 시각과 '재벌은 뭘해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는 비정상적 시각 공존 현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인들이다. 한 명이 정통재벌이라면 다른 한 명은 신흥재벌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올해 대규모 사회환원 및 기여를 약속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기업가로서 위기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고(姑)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미술품 2만1600점을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생전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 외 소아암 등 희귀질환 치료에 3000억원, 감염병 극복에 7000억원을 그냥 내놓기로 했다.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와 별도로 말이다.
천문학적 유산을 사회에 환원한 이 부회장 및 삼성 일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천문학적 상속세를 내기 위해 대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미술품 등을 처분해서 그 돈으로 상속세를 냈으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화가 피카소가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후손들에게 피카소 작품들을 상속세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현행법상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납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현금화했으면 대출을 좀 덜 받아도 됐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었을 텐데 삼성일가는 어찌됐든 사회 환원하고 대출로 상속세를 내겠다고 했다.
김범수 의장은 지난 2월 10조원이 넘는 재산 중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 중인 기업가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만으로 화제가 됐다. 김 의장은 그 전에도 기부를 해온 바 있다. 7달이 지난 지금 김 의장은 지금 사회환원의 아이콘이 아니라, 무리하게 골목상권을 침해한 기업의 대표처럼 회자되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브라이언(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나치게 판을 벌인 것은 맞지만, 올해 초 재산 5조원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한 것이 빛을 바래게 됐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기여한 부분들까지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인이 기부를 했다고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거나 보호해 줄 일은 아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 부회장이 불법승계 등과 관련해 잘못을 했으면 법적 처벌을 받으면 되고, 김 의장 역시 계열사 신고 누락 등과 관련 과오가 있으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기부도 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는 시각은 기부를 잘못된 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도 이 같은 기업인들의 사회환원 행위에 대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을 제대로 안 지킨 재벌을 욕할 줄 안다면, 의무 이상의 무엇인가를 하면 칭찬도 해야 앞뒤가 맞다. ‘재산이 그 정도인데 뭐가 대수냐’, ‘어차피 사회에서 착취한 것 아니냐’ 등 비꼬는 시각들은 기부 움직임을 더욱 주춤하게 만든다. 하고도 욕먹는 기부를 누가 하겠나.
기업인들 입장에선 사재를 직원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선택적으로 썼다면 오히려 더 화끈한 반응을 이끌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그리고 국가에 풀겠다고 한 행위는 어찌됐든 큰 결정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엔 재벌을 보는 잘못된 시각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재벌은 뭘 해도 욕먹어야 한다’는 시각과 ‘재벌은 뭘 해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뭘 해도 묙 먹어도 싸거나, 뭘 해도 용서해줘야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거액기부를 한 재벌들의 현 상황을 보며 기업과 재벌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더 냉정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