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우윳값 인상 등 물가 자극···정부 목표치 2.0% 달성 어려운 상황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여력 커져···서민 부담, 정책 금융으로 해결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소비자 물가 상승세가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해 물가 목표치를 지키지 못할 것이란 분석과 함께 추가 금리 인상 분위기가 무르익었단 진단을 내놓고 있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6% 상승하면서 5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선 재난지원금이 본격적으로 풀리고 추석 연휴 직후 우윳값과 전기요금 인상이 결정되면서 물가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국내 물가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물가 관리 목표치를 2.0%로 잡고 있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이를 지켜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소비자물가 흐름을 보면 계속 2% 중반 수준을 유지하는데 이 흐름이 한두달 사이에 끝날 것 같진 않다”며 “이게 재난지원금 때문에 일시적으로 오르는 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경기 회복 추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 재정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상태에선 정부 물가 목표치 달성이 쉽지 않은 상태로 가고 있다”며 “연초 물가 상승은 식료품 정도에 머물러 있어 관리 가능한 정도로 보였지만 현재는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앞으로도 상당히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현재 물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물가 불안 관련해서 내부 논의를 할 예정이긴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특별히 물가 안정 대책관련해서 발표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 유동성 조절로 물가 불안을 잡겠단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전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풍부하게 공급됐던 글로벌 유동성이 조절되는 거시정책적 변곡점에 서 있다”며 과도한 대출과 위험 추구에 따른 부실 위험 등을 선제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올렸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봤을 때 추가 금리 인상 여력은 충분하단 분석이다. 하 교수는 “현재 기준금리가 0.75%이지만 물가 상승률을 빼면 실질 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이기에 완화적 스탠스가 이어지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을 보면 지난해 0%대에서 올해 2% 넘는 수준으로 가고 있으니 실질 금리는 사실상 더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보다 경기가 회복세라 금리를 올릴 여지는 커졌다”며 “한두번 올린다고 해서 긴축으로 가는 수준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인플레이션이나 가계부채, 신용대출 등을 봤을 때 금리 인상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고 중장기적으론 계속 올릴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코로나19 상황과 경제가 급격히 악화하지 않는단 가정하에 기본적으로 물가 관리가 어려워지고 있고 유동성 회수를 위한 금리 정책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리 인상은 워낙 작은 규모였기에 추가 인상이 필요하지만 금리 인상 폭은 이후 상황을 봐야하는 부분이란 설명이다.
금리 인상이 물가 상승을 당장 멈추게 하진 않지만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시장에 파급을 미칠 것이란 예상이다. 하 교수는 “인플레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기대 심리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임금 협상 등 여러 물가에 영향을 주는 행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기대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를 올리면서 정부가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가 기대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단 것이다.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 서민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단 주장이 나온다. 물가 인상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서민들이 대출이자 부담까지 늘어나면 이중고를 겪게 될 수 있단 것이다. 하지만, 저금리 상황이 서민들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란 지적도 제기된다. 성 교수는 “지금 기준금리를 안 올리다보니까 아예 대출을 막는 형태로 되고 있는데 이게 서민들에겐 실제로는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민들 보단 부유층이 저금리 혜택을 더 챙길 수 있단 분석이다. 하 교수는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쌓아놓는 기회 비용이 없기 때문에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도 투기를 위해 빌리게 된다”며 “그런데 돈을 빌리더라도 신용도 좋은 사람은 쉽게 빌리지만 신용도가 나쁜 사람은 오히려 못 빌린다”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금 배분을 일률적으로 얘기하긴 어렵단 것이다.
김 교수는 “금리를 올리면 기존 대출자들이 이자 부담이 커져 부실화 가능성이 있고 이자가 높아지면 새로 빌리기도 어려워져 서민들이 어려워질 부분이 있긴 하다”며 “그렇다고 금리를 계속 안 올리면 빚이 급격히 증가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서민 부담은 재정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단 조언이다. 하 교수는 “서민 입장에서 장사가 잘 안돼 생계를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 금리가 올라가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며 “이것은 나라에서 책임을 져 줘야하는 부분으로 정책 금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선 통화정책이 제일 중요하다”며 “현재 정부가 확장 재정을 펼치고 있는데 물가를 봤을 때 너무 과도한 경기부양을 할 때는 아니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