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9월 중 법률 개정 완료 계획···종부세·양도세 등 기재위 쟁점 법안에 밀려
지자체, 내년 예산 편성 차질 우려···“재정 분권, 재원과 사무 함께 이전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지방 재정 강화를 위한 지방소비세율 인상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에 멈춰있어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년도 예산 편성을 위해 이달 중 처리가 시급하단 주장이지만 현실적으로 국감 이후에나 법안 처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급격한 세율 인상을 놓고 일각에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지방 분권을 위해선 중앙정부의 재원과 사무가 함께 지방정부로 이전돼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최근 국회 재정분권 특별위원회를 통해 국세인 부가가치세수 중 지방에 배분되는 비율인 지방소비세율을 4.3%포인트 인상한 25.3%로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달 안에 관련 법률을 개정해 내년부터 인상된 소비세율을 지방예산에 적용해 시행하겠단 계획이다.
하지만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 비중을 21%에서 25.3%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부가세법 개정안은 이날 현재까지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된 채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자체를 중심으로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관계자는 “지금 예산시즌인데 법안이 이달 중에 통과돼야 각 지방정부가 내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다”며 “이달 내 입법이 불발되면 나중에 추경으로 반영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고 여야간 쟁점이 크게 없는 법안인데 기재위에서만 통과가 안 된 상태란 설명이다.
협의회에선 최근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달 내 입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고 종합부동산세 법안 등 기재위 내 쟁점 법안들에 밀려 추진 동력을 얻기 쉽지 않단 분석이다.
한 야당 기재위원은 “지방소비세율 관련 법안은 지방자치제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긴 하지만 지금 기재위 내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소득세 중과 등 워낙 큰 이슈들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린 상황”이라며 “논의를 올리려면 여야 간사간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논의를 한다 해도 이달 안에 처리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소속 한 기재위원은 “그동안 종부세 문제로 계속 논란이 돼서 다섯차례 정도 회의하고 최근 위원회가 열렸을 땐 국감 일정을 잡았다”며 “여야 간사간 합의가 돼 순서를 정해야 논의할 수 있는데 긴급하게 열리지 않는다면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논의 없이) 국감일정으로 바로 들어갈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다른 야당 중진 기재위원은 “특별한 경우 여야 합의로 시일을 정할 순 있지만 어떤 법안이든 날짜를 정해놓고 처리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기준과 절차에 따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여당 기재위원은 “세법의 경우 보통 국정감사 끝나고 11월에 조세소위를 집중적으로 열어 처리한다. 평상시에는 그때그때 꼭 필요한 법안 중심으로 살펴보고 처리하거나 계류돼 넘어가거나 한다”며 “예산은 12월 1일까지로 처리 기한이 정해져 있다. 예산안 부수 법안도 다 예산안과 동시에 같이 처리된다”고 말했다. 국감 이후에 법안을 처리해도 예산 일정상 큰 문제가 없단 설명이다.
다만, 협의회 관계자는 “1단계 재정분권 당시 관련법이 개정이 미뤄지다 12월 말쯤 통과됐는데 이러면서 2020년 예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경으로 반영된 사례가 있다”며 국회의 늑장 입법으로 인한 일정 차질을 우려했다.
지방소비세 인상이 지방정부 재정 확충으로 이어졌단 측면에서 관련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단 주장이 나온다.
지방소비세는 지방재정 취약성 보안 등의 이유로 2010년 부가세액의 5%로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세율 인상이 단행됐다. 2014년 11%, 2019년 15%, 2020년 21%로 각각 올랐다. 이에 따라 지방소비세 세수는 2010년 도입 당시 2조6789억원에서 2019년 11조3455억원으로 연 평균 17.4%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 재정분권 추진 차원에서 지방소비세율 인상을 적극 활용했다. 이번 세율 인상도 2단계 재정분권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지방소비세율 인상이 너무 급격하게 이뤄져 중앙정부 재정에 구멍이 날 수 도 있단 우려가 나온다. 이번에 세율이 인상되면 3년 만에 14.3%포인트 오르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지난해 세율을 6%포인트 올리고 나서 또 다시 같은 이유로 4.3%포인트를 올리는 건 명분도 약하고 성급한 느낌이 있다”며 “지금 관리재정수지적자가 매년 3%포인트씩 늘어나고 있는데 10년이면 30%포인트이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지방소비세율 인상 여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가 재정 상황이 어렵지만 재정 분권이란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며 차기 정부에선 대대적인 재정 개혁으로 불안요소를 제거해야 한단 조언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가 재정이 여의치 않아 급격하게 지방소비세율을 올리는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중앙정부의 재원이 점진적으로 지방으로 가는 방향은 정책적으로 맞다”며 “지방소비세율을 올리면서 중앙의 사무도 이젠 제대로 지방에 이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